성 착취물 공유 텔레그램 대화방인 'n번방' 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뜨거운 가운데 청소년 성교육의 초점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선 성교육 관계자 사이에서 나온다.

'성폭력 피해 예방' 중심에서 '가해(범죄) 예방'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SNS 세상] n번방 쇼크…"성교육 '피해 예방→가해 예방' 바꿔야"
젠더 교육 모임 '아웃박스'에서 활동하는 황고운(경기도 고양 지역 초등학교 교사)씨도 그중 한 사람. 황 교사는 지난 1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하면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게 하는 전형적인 피해 예방 교육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단톡방에서 불법 촬영물을 돌려보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의) 사진을 공유하면서 품평을 했을 때 (교사나 어른이) 방관하지 말고 '잘못된 일'이라고 말하거나 '신고하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폭력 가해 아동이 '(피해 아동이) 좋아하는 줄 알았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까지처럼 단순히 피해 예방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4세 이상의 아이가 있는 가정에 성 평등 교재를 배송하는 스타트업 '딱따구리'의 유지은 대표처럼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이도 있다.

유 대표도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여성과 남성을 동등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성 인지 감수성을 기반으로 '동의 없이 상대의 사진을 공유나 유포하지 않아야 한다'는 등 기초적인 가해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며 '남녀가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고 (성적 행동에서) 상대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존 성교육에 대해서는 "대부분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예방 교육과 2차 성징 등 신체라는 표면적인 부분에 집중한 교육의 성격이 짙었다"며 "언제까지나 잠재적 피해자를 단속해서 될 일이 아니란 것이 이번 n번방 사건을 통해 확인됐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SNS 세상] n번방 쇼크…"성교육 '피해 예방→가해 예방' 바꿔야"
그러나 일부에서는 '가해 예방' 성교육에 대해 '모든 남학생을 예비 가해자로 보는 것 아니냐'고 반발하기도 한다.

내년쯤 일선 학교에 배치될 예정인 한 남성 예비 교사(27)는 "가해 예방 교육이라는 말만 보고 불편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수용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현직 교사 가운데 (가해 예방 교육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현재 군 복무 중이라는 이 교사는 "지난해 군인 성인지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데 수강자 반응이 반으로 나뉘어 반은 이해하고 반은 '불쾌하다'고 하더라"며 "현직 남교사들도 의견이 분분할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 남학생(25)도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사법부의 판단에 따라 처벌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남자는 모두 잠재적 가해자라고 매도하는 것은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이 같은 반응에 대해 손경이관계교육연구소 손경이 대표는 "코로나 감염증 등을 예방하는 공중 보건 방식에도 1차·2차·3차가 있는데 "1차는 전 국민을, 2차는 고위험군인 노인이나 아동을, 3차는 감염자·보균자를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라며 "가해 예방 교육은 이 가운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1차 예방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판하는 사람들은 가해 예방 교육이 마치 3차 예방에 해당한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남자, 여자가 아닌 모두가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라면서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 등을 학교에 적용해 성 인지 감수성을 길러주는 젠더 교육을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교육 전문 스타트업 '유니콘' 오지연 대표는 "용어만 보면 반발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가해 예방 교육'이라고 하는 것보다 (기존) 성폭력 예방 교육에 성 인지 감수성 관련 부분을 넣어 남녀 모두 부담 없이 교육받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경기 군포시에서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정민경(39)씨는 "아들과는 일부러 6∼7살 때부터 인권, 젠더 등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며 "아이들이 '무엇이 혐오이고 잘못된 행동 또는 생각인가'를 스스로 고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필요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SNS 세상] n번방 쇼크…"성교육 '피해 예방→가해 예방' 바꿔야"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