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여째 이어지는 집안 생활…장애아동도 "학교 가고 싶어"
성인 장애인도 시설 운영 중단으로 일상활동 못 해 '막막'
[르포] 장애아동이 부르는 '코로나19 극복의 노래'
"코로나19 아니면 수련회 갈 텐데…. 코로나 종식! 너무 싫어 헤이요~♬"
10일 오후 장애아동 4명이 함께 사는 광주 북구의 한 공동생활가정, 집 안에서는 태훈(18·가명)이의 어설프지만, 귀에 쏙쏙 박히는 랩 노랫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태훈이가 집에 꼭 박혀 다른 동생들 3명과 함께 지낸 지 벌써 한 달째다.

이곳 공동생활가정에는 고등학생 2학년 태훈이를 비롯해 중학생 1명, 초등학생 2명 등 총 4명의 지적장애 아이들이 함께 살고 있다.

평소 같으면 아침 7시쯤 일어나 원장 어머니의 엉덩이 토닥거림에 신발을 신고 학교 갈 준비를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탓에 개학이 연기되면서 장난꾸러기 꼬마들의 집안 생활은 하릴없이 이어지고 있다.

빨래 개는 법도 배워보고, 혼자서 목욕도 하고, 요리도 함께 해보지만, 하루는 길기만 하다.

집안에만 있어 답답한 아이들은 "선생님 공부하란 잔소리가 싫지만, 친구들 만나러 학교 가고 싶다"고 입을 모으며 이제는 지겨워서 하지도 않는 보드게임판을 만지작거렸다.

[르포] 장애아동이 부르는 '코로나19 극복의 노래'
아이들 중 가능 큰 형인 태훈이는 지겨운 일상에 취미 거리를 만들었다.

직접 연필로 가사를 꾹꾹 눌러 적어 작사한 랩을 동생들과 시설 선생님들에게 불러주고, 일요일 오전이면 동생들을 앉혀 놓고 "코로나가 완전히 소멸하고, 불쌍한 한 영혼 한 영혼을 다 구원해달라"고 기도한다.

코로나19 종식을 바라는 내용에 기특한 마음에 "코로나19가 뭔 줄 아느냐"고 묻자 "박쥐 먹어 걸리는 병. 걸리면 죽어요.

무서워요"라고 말했다.

뉴스에서 나올법한 말을 줄줄 말하는 태훈이를 보며 원장 어머니는 "어른들이 요즘 자주 나누는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들었다가 저렇게 줄줄 외운다"고 말했다.

학교, 아동센터, 학원 등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줄줄이 폐쇄되거나 운영 중단하면서, 장애 아이들을 보살피는 것은 시설장과 단 1명뿐인 시설 종사자의 몫이다.

시설원장 김혜경(50·여)씨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면서 가정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한 달째 24시간 장애아동을 돌봄을 이어가고 있다.

주 40시간 근무에 추가 근무 월 25시간 인건비는 지원되지만, 이를 초과한 돌봄 시간은 아이들과의 정으로 봉사하는 마음으로 대가 없이 하고 있다.

[르포] 장애아동이 부르는 '코로나19 극복의 노래'
그래도 항상 사랑을 고파하는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이라도 더 해먹일 수 없는 게 아쉬움이다.

코로나19로 식비 등 시설의 보육 부담은 늘었지만, 아이들의 복지 쿠폰이나 지원금 대부분을 식자재 구매 비용 등으로 써 다른 프로그램은 꿈도 못 꾼다.

김 원장은 "아이들이 엄마의 정을 정말 많이 느끼고 싶어하지만, 집안 생활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아이들도 지치고, 우리들도 지쳐가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 5개 특수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모두 1천23명으로 순회 교육이나 사회복지시설 생활로 돌봄을 받는 학생들을 제외하면 800∼900명이 개학 연기로 학교에 갈 수 없는 상황으로 파악됐다.

장애 학생은 만 18세까지 부모들이 돌봄 지원 휴가를 사용할 수 있지만, 나이가 많은 장애인 가족은 그나마 정책에서도 소외돼 어려움이 더 크다.

[르포] 장애아동이 부르는 '코로나19 극복의 노래'
"병원에 입원해서 오히려 다행이에요.

"
중증 지적장애인인 기순례(47·여) 씨에게 직업 재활 활동은 노동 그 이상의 의미다.

혼자 사는 기씨에게 직업재활 시설은 세상과 연결하는 유일한 창구이자 안식처와 같은 곳이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시설이 문을 닫으면서 꼼짝없이 집에만 머물러야 하는 처지가 됐다.

평상시라면 점심은 시설에서, 저녁은 활동 보조인이 차려주는 밥으로 끼니를 해결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최근 어깨 수술을 받아 병원 입원 치료를 받게 된 기씨는 병원식을 먹으며 그나마 끼니 걱정을 덜었다.

기씨는 병원에서 "돈 벌러 나가고 싶다"고 자꾸 말했다.

글을 읽지도, 셈을 하지도 못해 돈의 개념이 부족한 그에게는 이말은 '홀로 있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기씨의 사정을 잘 아는 시설 관계자들이 시간이 날 때마다 병원을 찾아와 필요한 것은 없는지, 불편한 일은 없는지 둘러보고 있다.

더 자주 찾아오고 싶지만, 시설이 문을 닫는 동안에도 장애인 근로자들의 임금을 주기 위해 작업을 대신해야 해 여의치 않다.

이신자 푸른하늘장애인보호작업장 원장은 "직업 재활이라곤 하지만 보호 개념으로 하루 2시간 일하고 나면 나머지 4시간은 장애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재활 시설뿐만 아니라 주간 보호시설 등도 모두 문을 닫으면서 활동에 제약을 받는 장애인들의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르포] 장애아동이 부르는 '코로나19 극복의 노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