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는 판사실, 변호사는 사무실서 재판…코로나19 새 풍경
"혹시 소송 대리인분들 의사소통이나 변론에 불편한 점 없었습니까?"…"네 좋았습니다"
5일 오후, 한쪽 벽면에 법전이 빼곡하게 비치된 서울고법 동관 2051 판사실. 서울고법 민사37부 권순형 부장판사는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A씨 등이 한국토지신탁을 상대로 낸 양수금 소송 변론 준비기일의 종료를 알렸다.

이날 권 부장판사는 법복이 아닌 정장 차림으로 본인의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재판을 진행했다.

책상 위에는 두 개의 모니터가 놓여있었다.

왼쪽 화면은 3개로 나뉘어 재판장과 원고·피고 측 대리인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었다.

오른쪽 화면에는 사건과 관련한 전자 소송기록이 띄워져 있다.

법정이 아닌 사무실에서 원격 중계 화면을 통해 재판을 진행한 것이다.

이 같은 이색적 풍경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서울고법이 도입한 원격 화상 재판의 모습이다.

재판부와 피고 그리고 원고 측 대리인은 모두 각자의 사무실 컴퓨터로 통신을 연결해 재판에 출석했다.

권 부장판사가 쌍방 대리인에게 영상·음성 송수신 상태를 확인했고, 곧이어 재판은 통상적으로 진행됐다.

영상·음성의 송수신 문제 없이 재판은 순조롭게 약 30분 동안 진행된 뒤 끝났다.

재판을 마무리한 재판부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5~10년만 지나면 '법정에 가서 불편하게 재판을 왜 했었을까' 하고 회고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로 이날 재판에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재판 진행 중 불편한 점은 없었냐는 질문에도 "전혀 없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것 같다.

대리인들도 굳이 법정에 나오지 않고 사무실에서 하면 편하지 않겠나"라고 대답했다.

'원격 화상 재판' 활성화를 꾸준히 주장해온 권 부장판사는 2006년 영국 출장 당시 현지에서 변론 준비절차를 법원과 재판 당사자 간 통화로 진행하는 모습을 보고 줄곧 국내 도입을 희망해왔다고 설명했다.

권 부장판사는 "굳이 일반 법정에서 재판을 열 필요가 없고 전화나 통신장비 등을 이용해 변론 준비·쟁점 정리·증거신청 채택 여부를 진행하는 건 굉장히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마침 코로나 사태도 있고, 국민들이 재판받는 데 불편함을 느끼실 거 같아서 평소에 제가 가진 생각으로 화상 재판을 진행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권 부장판사는 "영상재판은 전자 소송의 시즌 2이자 전자 소송의 미래다.

전자 소송도 처음 도입 당시 법관·법원 직원·당사자 모두 부정적이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만족스러워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영상 재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뜻을 밝혔다.

서울고법은 지난 4일에도 민사 사건을 심리 중인 재판부가 법정에서 원격 화상 재판을 진행했다.

이 법원은 향후 원격 화상 재판을 추가로 진행할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