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체육 관련 단체·기관 종사자 인권실태 조사
상사와 동료가 주요 가해자…체육단체 상명하복식 문화에 10%만 피해 신고
체육계 종사자 34% "직장갑질 당했다"…10명 중 1명 성폭력 피해
"성인인데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복장이나 머리는 물론이고 연가를 쓰는데도 눈치를 줍니다.

"
"상사가 '차는 여자가 타야 맛있다'는 말을 일삼고, 쓰다듬는 듯 어깨동무를 합니다.

"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의 '체육 관련 단체·기관 종사자 성폭력 등 실태조사'에 담긴 피해 증언이다.

인권위는 5일 인권위 교육센터에서 간담회를 열어 지난해 대한체육회, 대한장애인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 등 체육 관련 단체 종사자 1천378명(여성 541명·남성 83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심층면접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이들의 34.1%는 최근 1년 이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의 경우 절반에 달하는 45.5%가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유형별로는 회식 참여 강요(16.7%)가 가장 많았고, 개인사에 대한 뒷담화나 소문(16.2%), 욕설 및 위협적인 언행(13.4%), 음주 또는 흡연 강요(13.1%)가 뒤를 이었다.

괴롭힘의 빈도는 2∼3회가 가장 많았으나, 10회 이상 경험했다는 응답도 전체의 10%에 달해 괴롭힘이 반복적·습관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성희롱·성폭력 피해도 심각했다.

응답자의 10%가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을 직접적으로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 피해자(21.1%)가 남성 피해자(2.9%)보다 많았고, 비정규직(10.7%)의 피해 경험이 정규직(9.4%)보다 다소 높게 나타났다.

응답자의 6.2%는 불쾌감을 주는 성적인 농담, 성적 이야기 등을 경험했고, 4.5%는 회식 자리 등에서 옆에 앉혀 술을 따르도록 강요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성관계를 전제로 이익(승진, 보직, 임금 인상 등)을 제안하는 행위'(4건), '강제로 입을 맞추거나 몸을 만지는 행위'(11건) 등 지위를 이용한 범죄 사례들도 있었다.

성희롱·성폭력의 주요 가해자는 상사와 동료였으나, 상근·비상근 임원 비율도 높았다.

또 기관 소속 선수와 지도자, 상급 기관 공무원이 가해자인 경우도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성폭력 포함) 피해자들은 분노·적개심·복수심(29.7%), 무기력·우울감(20.5%), 수치심(19.3%), 불안감(12.4%), 수면장애(불면증, 악몽 등)(10.2%) 등 트라우마를 겪었다.

그러나 피해 사실에 대해 신고나 공식적인 구제 절차를 밟은 경우는 10.2%에 불과했다.

피해자들은 기관이나 동료·상급자에게 피해를 알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 '구설수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52.2%), '어떤 행동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41.9%), '항상 일어나는 일이고 다들 가만히 있으니까'(39.7%) 등을 꼽았다.

실제로 심층 면접에 참여한 20대 비정규직 남성은 "체육 단체이다 보니 상명하복식 문화가 심해서 거부 의사를 표현하면 바로 미운털이 박힌다"고 증언했다.

응답자들은 ▲ 임원 및 직장 내 구성원 대상 예방교육 ▲ 고충 상담창구 제공 ▲ 피해 발생 시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지도록 매뉴얼·가이드라인 마련 등을 개선 방안으로 제시했다.

인권위 의뢰로 이번 조사를 수행한 한국정책리서치 관계자는 "조사 결과 스포츠 단체·기관의 조직 문화가 여전히 권위주의적이고 남성 위주임이 드러났다"며 "응답자들은 조직 관리자·임직원들의 인권 의식과 감수성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조사를 바탕으로 전문가 자문, 관계기관과 협의를 거쳐 가이드라인을 포함한 개선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