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 금지인데도 위약금 내야"…코로나에 우는 여행객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해외여행을 취소하려는 소비자와 여행사·숙박업소 간 분쟁이 잇따르고 있다. 거액의 위약금을 물거나 일방적으로 예약을 취소당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관련 위약금 분쟁 해결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소비자들은 사실상 업체 측의 재량과 선의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행사와 특약 맺었다면 ‘환불 불가’

3일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운영하는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 따르면 지난주(2월 24일~3월 1일) 해외여행 관련 상담 건수는 총 1353건으로 전체 서비스 분야 중 1위를 기록했다. 한 상담원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여행을 취소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여행사·호텔 위약금 관련 문의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환불 불가’ 조건의 여행상품을 예약했다가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 넘는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소비자가 쏟아지고 있다.
"입국 금지인데도 위약금 내야"…코로나에 우는 여행객들
공정위가 고시한 ‘국외여행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소비자가 여행 개시 30일 전까지 예약 취소를 요구하거나 천재지변·전쟁·정부명령·파업 등 사정이 발생한 경우 계약금 전액 환불이 가능하다. 그러나 업체 측과 예약 당시 환불불가 등 별도의 특별약관을 맺었다면 원칙상 환불이 불가능하다. 한국인 여행객의 입국을 금지한 몰디브, 홍콩, 터키, 이스라엘 등 36개 국가의 여행 상품이나 숙박 시설 등을 예약한 경우에도 일부 여행사는 환불이 불가능하고 일정 변경만 해주겠다는 방침이다.

소비자들은 코로나19 사태는 본인의 귀책 사유가 아니어서 환불받아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구제받을 방법이 마땅찮다. 사인 간 계약을 맺은 민사상 문제에 해당해 한국소비자원 등 관련 기관은 업체에 합의를 권고하거나 중재할 수 있을 뿐 강제적으로 개입할 법적 권한이 없다. 과거 코로나19와 비슷한 메르스, 사스 등 전염병이 천재지변으로 인정된 사례도 없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규모가 있는 여행사나 호텔은 입국금지를 내린 국가에 대해선 자체 재량으로 위약금을 면제해주고 있지만, 소비자의 단순 우려로 인한 예약 취소까지 떠안는 것은 무리”라고 털어놨다.

“나는 한국 사람, 대구 출신” 협박까지

자구책으로 해외 여행사나 현지 호텔을 상대로 ‘코리아 포비아’를 이용해 환불을 받아내는 사람들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의 대규모 감염자 수와 전파 속도, 특정 지역 및 직업 등을 강조해 업체를 설득하는 방법이다. 지난달 말 인도네시아 발리로 가족여행을 떠나려고 했던 박모씨는 “한국은 감염자가 4000명을 넘어가는 위험한 상황인데 환불을 안 해주면 갈 수밖에 없다”고 수차례 호텔 측을 설득해 1년 안에 사용할 수 있는 바우처를 받아냈다. 프랑스 파리 여행을 계획했던 직장인 김수연 씨(28)도 “나는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대구 출신”이라고 메일을 보내 호텔 측으로부터 환불해주겠다는 답장을 받았다.

여행을 앞두고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현지 업체로부터 일방적으로 예약을 취소당하는 경우도 있다. 네이버 여행 전문 카페 ‘유랑’에는 에어비앤비 호스트나 한인민박 주인 등에게 예약 취소를 통보받았다는 피해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독일 여행을 온 대학생이라고 밝힌 한 게시글 작성자는 “체크인이 오후 4시인데 당일 오후 1시40분에 갑자기 에어비앤비 호스트로부터 취소 메시지를 받아 무척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신연수/박종서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