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충격이 소비·생산 등 실물경제 위축을 넘어 금융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한국경제신문이 1일 ‘코로나19 경제충격과 대응방안’을 놓고 진행한 경제학자 인터뷰에서 이들은 한목소리로 “올해 한국은 물론 세계 경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제학자들은 코로나19의 충격이 영세한 자영업자·중소기업, 과도한 가계대출 등 한국 경제의 ‘약한 고리’에 집중되면서 금융위기를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실물경제가 위축되면서 차입금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연체자가 속출할 것”이라며 “금융회사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2%대까지 치솟으면서 금융부실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말 2000조원을 넘어선 부동산 관련 금융부채와 670조원이 넘는 자영업자의 빚이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경제학자들은 정부가 금융부실의 파급 경로를 차단하면서 방역대책 마련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채가 많은 항공업체와 자영업자가 쓰러지면 실물·금융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우려가 있다”며 “한계에 내몰린 기업과 자영업자에 더 구체적이고 강력한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갑영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최선의 경기부양 대책은 지역감염 확산을 막는 것”이라며 “방역대책에 재정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생산·소비 위축 → 소득 감소 → 연체 속출…코로나發 빚폭탄 터질 수도"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국내외 경제에 ‘퍼펙트 스톰’(복합 악재에 따른 초대형 위기)을 부를지 모른다는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앤디 셰 전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와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 등은 “코로나19가 대유행으로 확산하면서 세계 경제가 몸살을 앓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경제학자들도 코로나19로 인한 국내외 경기침체로 내수가 무너지고 수출길마저 막힐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가 한국 경제의 ‘약한 고리’로 꼽히는 ‘과도한 가계부채’와 ‘경쟁력 없는 자영업자·중소기업’들을 무너뜨리면서 전체 경제 시스템에 충격파를 줄 수 있다는 얘기다.“코로나19, 금융회사 연체율 높일 우려”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1일 코로나19를 반영해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3.1%에서 2.8%로 하향 조정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11년 만에 가장 부진할 걸로 내다봤다. 무디스도 최근 코로나19가 대유행으로 번질 확률을 기존 20%에서 40%로 끌어올리면서 “올 상반기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 침체를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했다.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경제학자들의 시각도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 공장이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훼손됐다”며 “코로나19로 소비심리가 급격하게 얼어붙은 데다 국내 기업들의 생산에도 차질이 생긴 만큼 경제충격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실물경제 위축이 금융부실로 전이될 우려가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많은 직장인들이 아파트를 사기 위해 소득에 비해 빚을 많이 냈고 벌이가 시원찮은 자영업자들은 부동산을 담보로 적잖은 차입금을 조달했다”며 “코로나19로 생산·소비가 위축되면 직장인과 자영업자의 소득이 줄고 이자비용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올라가면서 금융회사의 건전성 지표가 급격히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말 가계빚(가계신용) 잔액은 1600조1322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빚 비중은 83.3%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위험수위 임계치(80%)를 넘어섰다.“방역·마스크·병상 투자에 재정 쏟아야”경제학자들은 정부가 최근 발표한 16조원 규모 민생·경제대책에 대해 “실효성 없는 F학점 대책”이라고 혹평했다. 정부가 이번 대책의 초점을 ‘소비 확대’에 맞춘 데 대해 “실책”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정부 대책에는 3~6월에 쓴 신용·체크카드 사용액에 대해 소득공제율을 두 배로 늘리고 자동차 개별소비세를 70% 인하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반적 경기부양 대책이지 코로나19 맞춤형 지원대책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감염 우려로 외출을 삼가야 할 시점에 소비를 장려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상봉 교수는 “마스크 공급, 병실 공급 확대 등 방역과 국민안전에 써야 할 돈을 엉뚱한 곳에 쓰려 하고 있다”며 “소비를 유도하는 정책은 코로나19가 잡힌 뒤에 해야 한다”고 말했다.이들은 정부가 코로나19 관련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는 등 재정 씀씀이를 늘리기로 한 데 대해 “민간 투자·소비를 위축시키는 이른바 ‘구축효과’만 부각될 수 있다”는 반응을 내놨다. 정부가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한 국채 발행을 늘리면 시장금리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비용항공사(LCC)와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 대책을 정부가 내놨지만 실효성이 크지 않다”며 “이들 업체의 신용도가 낮아 금융회사 대출심사 문턱을 넘지 못할 가능성이 큰 만큼 정부가 실제 현실에 맞게 지원대책을 손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미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대구 여행금지’ 경보를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발령했다. 인천공항 등에선 앞으로 미국행 비행기 탑승객에 대한 의료검사를 강화한다.미 국무부는 이날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대구에 대한 여행경보를 최고 위험등급인 4단계 ‘여행금지’로 격상했다. 대구를 제외한 나머지 한국 전역에 대해선 이전처럼 3단계 ‘여행 재고’를 유지했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26일 한국에 대한 여행경보를 2단계 ‘각별한 주의’에서 3단계로 올렸다. 그로부터 사흘 만에 대구에 한해 여행경보를 높인 것이다.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이날 국무부 발표 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국무부에 ‘한국,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오는 개인에 대해 의료검사를 할 때 조율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기자회견은 미국에서 코로나19와 관련한 사망자가 처음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트위터를 통해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공지했다.미국이 한국·이탈리아발 외국인에 대해 직접적인 입국제한 조치를 내리진 않았지만 의료검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방역망을 강화한 것으로 해석된다.트럼프 대통령은 뒤이어 1일 오전 트위터에 글을 올려 “일부 위험도가 높은 국가(한국과 이탈리아를 지칭)의 공항을 출발할 때뿐만 아니라 미국에 도착해서도 탑승객을 대상으로 검사할 것”이라고 밝혔다.사망자는 서부 워싱턴주에 살던 50대 남성으로 기저질환을 앓고 있었으며, 감염자와 접촉하거나 발병 지역을 여행한 증거가 없다고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밝혔다. 대구를 다녀온 뒤 코로나19에 걸린 것으로 의심되는 미국인도 나왔다. 미 CNN과 워싱턴주 보건당국에 따르면 워싱턴주에 사는 50대 남성이 지난 2월 대구를 방문한 뒤 코로나19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고 CDC의 확진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미 하버드대, 예일대 등은 홈페이지 및 이메일을 통해 한국을 비롯해 CDC가 3단계 여행경보를 발령한 나라를 다녀온 방문자에 대해 14일간 자가격리를 권고했다.터키는 1일부터 한국을 오가는 비행기의 운항을 전면 중단했다. 베트남은 무비자 입국금지에 이어 호찌민과 하노이에 한국발 여객기의 착륙을 불허하기로 했다. 일본 외무성은 이날 대구와 경북 청도에 대한 감염증 위험정보를 상향 조정하면서 방문 중지를 권고했다.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중국 베트남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등 한국과 경제 교류가 많은 국가들이 잇달아 ‘한국인 입국 금지 및 제한’에 나서면서 한국 기업의 해외 사업에 비상등이 켜졌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기업의 해외 출장·미팅, 현지 마케팅 행사는 사실상 완전 중단됐다. 국내 공장이 줄줄이 ‘셧다운(일시 가동 중단)’되는 가운데 해외 공장 완공 일정마저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에 안팎으로 손발이 묶인 기업들이 골병이 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1일 외교부에 따르면 한국인 입국을 금지·제한한 곳은 중국 베트남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등 81개국에 달한다. 한국에 빗장을 걸어닫는 국가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여서 국내 기업의 해외 사업 차질은 물론 ‘수출 한국’의 입지도 위태로워졌다는 분석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매출 상위 10대 기업의 해외 매출 비중은 65.9%에 달했다.기업들은 특히 베트남이 한국인에 대해 강력한 입국 제한 조치를 하자 큰 충격에 빠졌다. 한국은 베트남의 최대 투자국이며, 8000여 개 기업이 진출해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9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 예정이던 모바일 연구개발(R&D)센터 착공식을 취소했다. 이 행사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참석할 계획이었다.국내 기업의 해외 출장도 막혔다. 현대자동차는 지난달 27일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와 수소에너지 분야 협업을 위해 현지에 직원을 보냈지만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했다. 대기업 관계자는 “한국인과의 만남 자체를 꺼리는 거래처가 많아 해외 주재원들도 난감해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삼성전자의 중국 시안 2공장, LG디스플레이의 광저우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공장의 완공 및 양산 일정도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서의 장비 운반과 협력사 직원 투입 등이 차질을 빚고 있어서다.삼성, 하노이 R&D센터 기공식 취소…LGD, 광저우공장 양산 차질“매출의 3분의 2가 끊기게 생겼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한국발 입국자를 금지·제한하는 ‘코리아 포비아(공포증)’가 확산하고 있다. 해외 출장길이 막히면서 기공식과 고객사 미팅이 취소되고, 가동을 앞둔 공장의 양산도 지연될 처지에 놓였다. ‘코로나19발(發) 셧다운(일시적 가동 중단)’에 따른 국내 공장 생산 차질 속에 매출 비중이 높은 해외 사업까지 타격을 받으면서 한국 기업들이 사면초가로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다.최대투자국 韓 입국 막아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달 29일로 예정됐던 베트남 하노이 연구개발(R&D)센터 기공식을 취소했다. 1억6000만달러(약 2000억원)를 들여 모바일 R&D센터를 짓는 사업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주요 경영진도 참석할 예정이었다.삼성전자는 베트남에서 모바일 제품을 연간 1억7000만 대 생산하고 있다. 2017년 기준 삼성전자와 계열사들이 베트남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달한다. 이런 삼성전자도 베트남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우려를 이유로 한국인의 무비자 입국을 중단하자 기공식도 못한 채 첫 삽을 떠야 했다.올해 초 하노이에서 부품공장 가동을 시작한 한 중견기업 대표는 “한 달에 보름가량 하노이에 출장을 가 공장 관리를 하는데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한국은 베트남의 최대 투자국가다. 누적 투자액이 570억달러(약 69조원)에 달한다. 베트남 남부 바리어붕따우성에 1조원을 투자해 폴리프로필렌 공장을 짓고 상업가동을 시작한 효성도 원료 수급 등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바짝 긴장하고 있다.베트남 정부가 지난달 29일 인천을 출발해 하노이로 가던 아시아나 OZ729편에 대해 하노이 노이바이공항 착륙을 불허하면서 이 항공기는 이륙 40분 만에 인천으로 긴급 회항했다.中 신공장 가동 차질 우려중국은 광둥성 광저우와 산시성 시안, 장쑤성 난징·쑤저우 등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한국발 입국자에 대해 자가격리(14일) 등 입국강화 조치를 취했다. 현지에 공장을 둔 한국 기업들은 애를 태우고 있다. 광저우 LG디스플레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공장은 올해 1분기(1~3월) 가동 계획에 빨간불이 켜졌다. 막바지 수율(투입 원자재 대비 완제품 비율) 개선 작업을 진행 중이었지만, 한국인 엔지니어들의 출장이 차질을 빚고 있어서다.세계 3위 스마트폰 시장인 인도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중심국인 말레이시아 등도 한국발 입국을 제한해 기업들의 손발이 묶일 처지가 됐다. 사우디아라비아 조선소에 지분을 투자한 현대중공업과 지하철 공사를 맡고 있는 삼성물산 등도 입국제한에 따른 비상 계획을 점검하고 있다.삼성전자는 소비자가전(CE) 부문을 중심으로 이달 말까지 해외 출장 계획을 전면 취소했다. 일부 가전 신제품의 해외 출시 행사도 재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신제품 판매가 본격화하는 시기인 3월 출장 중단은 뼈아프다”고 했다. 기업들은 산업통상자원부에 한국인 격리 완화 등을 해외 출입국당국과 협의해 달라고 건의했다. 출국에 앞서 한국 공인의료기관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아니라는 보건증을 발급받으면 해외 입국장에서 체온 측정 등 간단한 검사만 받고 격리 조치는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한국 기업 신뢰 ‘흔들’기업들은 코로나19 사태가 한국 기업의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북핵 우려로 한국 기업의 주가가 상대적으로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되는 것처럼, 국가 차원의 코로나19 대응 실패로 한국 기업에 대한 평판이 덩달아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 건설 수주전에 뛰어든 국내 한 대형 건설회사 관계자는 “중동쪽 발주처가 최근 미팅에서 ‘전염병(코로나19)이 창궐한 한국이 정상적으로 공사를 맡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고 말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해외 출장이 막히는 것보다 ‘메이드 인 코리아’의 이미지가 훼손돼 향후 입을 타격이 더 걱정”이라고 지적했다.황정수/김보형 기자/김정은 기자/하노이=박동휘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