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훈 집필교사 "5·18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잣대"
[당신의 5·18] '분노를 넘어, 가치를 담는다' 5·18 교과서 만드는 교사들

"분노만 가지고 아이들에게 5·18을 가르쳤더니, 남는 게 없었습니다.

새 교과서에는 분노를 넘어 가치를 담을 겁니다.

"
1978년생 역사 교과 선생님인 박래훈 교사에게 1980년 5월 당시의 살 떨리는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어린 시절 교회를 함께 다니던 주암마을 피해자의 시력 잃은 초점 없는 눈과, 최루 연기 가득한 거리에 쭈그려 앉아 울고 있는 시민의 모습은 당시 광주를 '분노'의 감정으로 그의 마음속에 새겼다.

2005년, 성장해 역사 교사가 된 그는 해마다 5월이 되면 제자들과 5·18을 이야기했다.

정규 교과서에 몇줄로 짧게 정리된 사실의 이면을 알려주고 싶었으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분노뿐이었다.

"왜 쏘았니, 왜 죽었니…."
꼬리에 꼬리를 무는 5·18에 대한 아이들의 궁금증은 결국 분노로 이어졌으나, 그러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전남 순천시 별량중에 근무하는 박 교사는 아이들에게 5·18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전남역사교사모임 소속 교사들과 함께 고민하다 5·18 기념재단과 연이 닿았다.

기념재단은 2007년 출간한 5·18 중등교과서를 5·18 40주년을 맞아 다시 만들기로 했고, 박 교사는 대표 집필자를 맡았다.

집필에 참여한 교사 중에는 지금은 현직에서 은퇴했지만, 5·18을 경험하고 최초 중등 인정 교과서 집필에도 참여한 장용준 전 함평고 교장도 함께하고 있다.

5·18 당시 '함께하지 않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빚진 마음으로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교사도 있다.

[당신의 5·18] '분노를 넘어, 가치를 담는다' 5·18 교과서 만드는 교사들

새 5·18 교과서 집필에 앞서 교사들은 역사적 사실을 넘어 5·18의 어떤 가치를 교과서에 담을지 고민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민주, 인권, 공동체, 참여'와 같은 단어로 정리된 5·18의 가치를 글로 푸는 일은 쉽지 않았다.

특히 선악의 이분법에 빠지지 않으려 애썼다.

'이렇게 쓰면 살아있는 역사를 경험하신 분들이 상처받지 않을까', '계엄군은 무조건 악이었나' 등의 고민을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아이들과 5·18 가치를 함께 이야기할 교과서의 밑그림을 그려갔다.

박 교사 개인적으로는 5·18 공동체의 가치에 주목했다.

고립된 광주 사람들이 함께 똘똘 뭉쳐 아픔을 나누고 서로 도와, 정의·가치를 함께 지켰다는 의미 덕분에 5·18이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라고 생각했다.

원고가 완성된 5·18 중등 새 교과서는 5·18 40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오는 5월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 교과서는 광주교육청의 정식 인정 과정을 밟아 중등 과정에서는 두 번째 5·18 인정 교과서로 교육 현장에서 활용된다.

집필 선생님들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선생님들은 새 교과서로 어떻게 수업할지 다시 고민을 시작해 새 교과서 공개와 함께 시범 수업도 할 계획이다.

박래훈 교사는 "나에게 5·18은,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해주는 잣대"라며 "새 교과서가 제자와 선생님이 함께 공감하며 배우는 자료인정 교과서로 활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당신의 5·18] '분노를 넘어, 가치를 담는다' 5·18 교과서 만드는 교사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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