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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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훈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57·사법연수원 19기)는 ‘역전의 명수’로 불린다. 패색이 짙은 조세사건들이 그의 손을 거쳐 승소 판결을 받았다. 누가 보더라도 세금회피용 상품이라던 엔화스와프예금의 ‘누명’을 벗겨준 사람도 강 대표였다. 업계 최고의 ‘조세전문가’ 강 대표를 지난 18일 서울 삼성동의 안동국시집 소연에서 만났다.

강 대표는 “25년 전 안동지원에서 판사로 일하면서 먹었던 맛을 잊지 못해 요즘도 후배 변호사들과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식탁 위에 놓인 종이 테이블보에는 율촌의 로고와 함께 ‘강석훈 대표님 일행의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까지 인쇄돼 있었다. 경북 안동에서 유래한 안동국시는 밀가루와 생콩가루로 반죽해 국수를 만든다. 소연에서는 한우 양지를 기본으로 육수를 낸다. 최저기온이 영하 8도까지 떨어져 으슬으슬한 날이었지만 슴슴한 안동국시 국물을 들이켜자 몸이 금세 녹았다.

고향 어머니가 편지로 “사시 봐라”

서울대 법대 졸업, 사법시험 합격, 서울고등법원 판사, 대형 로펌 대표…. 강 대표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학창시절 ‘최대의 사고’가 점심시간에 소주를 마시다 걸린 것이었다. 경북대부속중을 다닐 때 그 일로 사흘간 근신 처분을 받았다. 당시 경북대부속중은 수석 졸업자에게 경북대 총장상을 줬다. 상패는 교정의 향나무를 잘라 제작했다. 강 대표는 음주 적발 이력 때문에 총장상을 받을 수 없었지만 향나무 상패는 챙길 수 있었다. 학교 측이 공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을 그냥 졸업시킬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학력 최우수상’이라는 이름의 상을 새로 제정하는 묘수를 냈다. 공부를 무척 잘하셨던 모양이라고 했더니 그저 웃기만 했다. 서울대 법대 합격도 따 놓은 당상이었다.

국시 그릇이 바닥을 드러낼 무렵 수육과 모둠전이 나왔다. 고소한 호박전이 청량한 막걸리와 깔끔하게 어울렸다. 대학시절 강 대표는 사법시험에 적극적으로 달라붙지 않았다. 1980년대는 학생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났고 관악캠퍼스도 뒤숭숭했다. 강 대표는 “법학이 ‘빵(출세)을 위한 학문’이란 정서가 만연하던 시기”라고 회고했다. 사시를 치르지 않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하면서 대구에서 함께 상경한 친구들과 신나게 어울려 다녔다. 민법총칙을 끝까지 읽은 것도 대학 4학년이 되고 나서였다. 급기야 시골 고향의 어머니로부터 편지까지 받았다. 편지에는 “제발 사시를 치거라”고 적혀 있었다. 어머니는 강 대표의 같은 과 친구에게 부탁해 강 대표 몰래 사시 원서까지 냈다.

강 대표는 사시 도전 첫해 1차에서 덜컥 붙었다. 두 번째 해에는 2차도 붙었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인 3차 면접은 떨어졌다. 300여 명의 2차 합격자 가운데 면접에서 낙방한 사람은 단 9명이었다. 그에게 닥친 인생의 두 번째 시련이었다.

강 대표는 막걸리를 크게 한 모금 들이켰다. 그는 “당시 면접관이던 이수성 전 국무총리가 ‘집은 좀 사느냐’고 물었을 때 불합격을 직감했다”고 했다. 형편이 괜찮으면 다시 한번 도전해보라는 말로 들렸다고 했다. 강 대표는 “면접에서 떨어지고 두세 달 방황했는데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털어놨다.

이듬해 심기일전을 했다. 1987년 이화여대에 입학한 여동생과 서울에서 자취를 하면서 여동생이 차려준 밥을 먹으며 공부했다. “나는 자취를 했다고 하는데 여동생은 자신이 하숙을 친 것이지 오빠가 무슨 자취생이었냐며 지금도 타박을 준다”고 했다. 곧바로 1차 시험과 2차 시험 그리고 면접까지 모두 붙었다. 그래도 좋은 경험을 했다고 했다. “면접에서 고배를 마시지 않고 바로 법조인이 됐다면 평생 겸손함을 배우지 못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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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재판연구관 조세팀장 출신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1990년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강 대표에게는 초임 판사였던 당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오류동 비디오가게 모녀 피살 사건’의 주심을 맡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90고합1. 아직도 사건번호까지 기억하고 있다. 살인범으로 지목돼 재판에 넘겨진 10대 청소년이 수사기관에선 자신의 범행을 인정했다가 법정에서 돌연 “경찰의 강압에 의해 거짓으로 진술했다”며 자백을 뒤집은 사건이다. 강 대표는 “법복을 덮고 며칠간 쪽잠을 자면서 고민하다 결국 무죄를 선고했다”며 “나중에 대법원에서도 무죄가 확정됐지만 당시 마지막까지 고심했던 사건”이라고 말했다. 직접 보지 않은 진실을 가려야 하는 판사의 숙명, 한 사람의 인생을 뒤흔들 수 있는 형사 재판의 어려움이 잠시 분위기를 무겁게 했다.

화제를 결혼으로 돌렸다. 부인 이야기를 꺼냈더니 대뜸 “고마워한다고 써주세요”라고 했다. 그는 무인도에 갔을 때 꼭 가져가고 싶은 것 한 가지가 뭐냐는 질문에 아내의 사진이라고 했다. 부인은 외가 쪽에서 소개받았다. 첫 만남 때 아내가 대학교 3학년이어서 “공부나 하라”고 돌려보냈다. 결국 다시 만나 결혼에 골인했는데 “누가 재회의 단초를 제공했는지는 아직도 양측의 주장이 엇갈린다”고 했다.

17년 동안 일했던 법원을 떠난 이유는 조세 분야를 계속 연구하고 싶어서였다. 판사에서 변호사로 인생의 전환점을 이야기하려던 때 문어숙회가 나왔다. 비빔장에 무친 미역을 곁들여 먹으니 쫄깃한 맛에 새콤함이 더해져 바로 다음 젓가락을 불렀다.

그는 대법원 재판연구실에서 조세팀장을 지냈다. 2002년 서울고법 행정부에서 조세사건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대법원 조세 전담 재판연구관과 조세팀장을 2년씩 지냈다. 로펌업계에서 군침을 흘리는 법관 가운데 가장 인기가 많은 자리 중 하나가 조세팀장이다. 강 대표는 “대법원에서 4년 정도 조세 사건을 다루다 보니 그제서야 통찰력이 생기는 것 같았다”며 “세법에 한창 재미를 붙일 때였는데 일선 법원에 가면 일반 형사나 민사부 재판장을 맡게 될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2007년 법원을 나오며 강 대표가 향한 로펌은 ‘조세의 명가’ 율촌이었다. 조세로 이름을 날리던 우창록 변호사가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나와 차린 율촌은 현대그룹의 1300억원대 세금 소송을 ‘100% 승소’로 이끌며 자리를 잡았고 강 대표의 영입으로 승승장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변호사가 되니까 뭐가 좋냐고 물으니 “좋아하는 골프를 마음껏 칠 수 있고, 누구에게나 명함을 망설임 없이 내밀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다”고 답했다.

강 대표는 변호사로 생활한 13년간 가장 짜릿한 순간으로 “대법원 재판연구관 시절에도 바꾸지 못한 조세 판례를 율촌에 와서 바꿨을 때”라고 했다. 2006년 재판연구관실 조세팀장 시절, 납세에 불만이 있을 때는 조세심판원의 재조사가 들어간 시점부터 90일 내에 소를 제기하도록 제한한 판례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소송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라고 봐서 대법관 13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넘겼지만 대법관들은 기존 판례를 그대로 유지했다.

판례 변경의 기회는 4년 만에 찾아왔다. ‘4년차 변호사’ 강 대표는 율촌에서 비슷한 사건을 대리해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갔고 마침내 “조세심판원의 재조사 결정에 이어 국세청의 후속 처분이 나온 뒤부터 90일을 기산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강 대표는 “소송가액이 1억원짜리 사건이어서 로펌 영업에 큰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중요한 법리 변경을 이끌어냈다는 자부심이 있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양극단의 구성원을 조화시키는 게 리더 역할”

양갱과 과일이 후식으로 나올 무렵 강 대표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대표가 돼서 한 일 가운데 늘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라며 내민 건 사내 출입증이었다. 출입증 뒤편에는 ‘정도를 걸으며 혁신을 지향하는 최고 전문가의 공동체’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창립 멤버였던 우창록 윤세리 전 대표에 이어 지난해 지금의 3인 공동대표 체제가 출범하며 새롭게 만든 율촌의 비전이다.

강 대표는 새로운 비전을 창출하기 위해 결성된 태스크포스(TF)의 팀장을 맡았다. 사내에 익명으로 ‘율촌 비전 게시판’을 열고 변호사를 포함한 전 직원 800명의 의견을 모았다. 거기에서 뽑아낸 키워드로 만든 게 지금의 모토다.

내년부터 총괄 대표변호사를 맡게 되는 그에게 조직 운영에 대한 키워드를 묻자 ‘같은 방향’이라고 했다. 그는 “전문가들의 파트너십을 기본으로 다양한 성향과 생각을 지닌 율촌 사람들을 순탄하게 조율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법무법인 율촌(律村)은…

‘뜻을 모으고 실력을 합쳐 법률가의 마을을 세우다’라는 의미를 담아 1997년 설립됐다. 파트너 변호사 6명으로 시작한 율촌은 설립부터 지금까지 인수합병(M&A) 없이 성장해 현재 직원 850명과 함께하는 국내 4대 로펌이 됐다.

율촌은 2019년 초대형 M&A인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의 배달의민족 인수 자문에 참여했다. 최근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 재판에서 타다 측을 대리해 무죄를 이끌어냈다.

율촌은 고용노동부가 주최하는 일자리 창출 유공 정부포상에서 지난해 대통령표창을 수상했으며 국내 로펌 최초로 장애인고용 우수사업장에 선정되기도 했다.

■ 강석훈 법무법인 율촌 대표 변호사 약력

△1963년 경북 경산 출생
△1982년 대구 대륜고 졸업
△1986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88년 서울대 법과대학원 수료
△1990년 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
△1994년 대구지법 안동지원 판사
△1998년 미국 조지타운 로스쿨 LLM (법학석사)
△2002년 서울고법 판사
△2003년 대법원 재판연구관
△2007년 법무법인 율촌 입사
△2010년 기획재정부 고문 변호사
△2013년 행정안전부 고문 변호사
△2019년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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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훈 대표변호사의 단골집 소연

깔끔하고 담백한 육수가 자랑…안동국시·멸치국수 전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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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은 서울 삼성동에 있는 칼국수 전문점이다. 삼성점과 서초점 두 군데 중 삼성점이 먼저 생겼다. 소연 삼성점은 지하철 9호선 삼성중앙역과 코엑스 사이에 있다. 주위에 로펌이 많아 법조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가장 유명한 메뉴는 안동국시와 소연국수다. 안동국시는 한우 양지로 육수를 끓이고 그 위에 호박과 고기 등의 고명을 얹어 낸다. 뽀얗고 담백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소연국수는 멸치 육수에 계란 등의 고명을 얹는다. 10월에서 1월 사이에 잡은 좋은 멸치만 골라 육수를 내는데 깔끔하면서도 매콤한 맛을 자랑한다. 보쌈과 수육, 모둠전 요리는 국수와 곁들여 먹으면 안성맞춤이다. 동태전과 호박전, 미역전 등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고은희 소연 삼성점 대표는 “손님들이 음식이 전체적으로 깔끔해서 먹고 나면 속이 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며 “아이가 먹기에도 부담없어 남녀노소 단골 손님의 연령대가 다양하다”고 말했다.

신연수/이인혁/남정민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