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경증·중증 나눠 의료기관별 진료 역할 분담해야"

국외 위험지역을 다녀온 적도 없고 확진자와 접촉하지도 않았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환자가 잇따라 등장하며 국내에서도 지역사회 확산 조짐이 보이자 방역 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 정은경 본부장도 18일 브리핑에서 "국내외 상황을 반영할 때 코로나19 발생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 방역망 밖 환자 잇따라 발생
지난 1월 20일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고 18일 현재까지 국내에서는 31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이 중 12명은 완치돼 병원문을 나섰다.

나머지 환자도 대부분 상태가 안정적이어서 조만간 퇴원자가 더 나올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로 국내서 숨진 사람은 지금까지는 없다.

이렇게 국내서 우려했던 것보다 많은 확진자나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최근 며칠 사이 환자 발생 양상은 이전과는 달라 방역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29번, 30번 부부환자와 31번 환자 등 3명의 확진자는 감염경로가 미궁이다.

역학조사 중이어서 최종 결과가 나와봐야 하지만 현재까지 이들 환자는 해외여행 이력도, 환자와 접촉한 이력도 없다.

언제, 어디에서 누구한테 감염됐는지 오리무중이다.

29∼31번 환자가 확인되기 전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28명의 환자는 거의 감염경로가 확인됐다.

11명은 중국 또는 제3국(태국, 싱가포르, 일본 등)에서 감염된 1차 감염자였다.

나머지 17명 중에서 12명은 확진 환자의 지인이거나 접촉자에 의한 2차 감염자였고, 5명은 2차 감염자와 접촉한 3차 감염자였다.

감염원과 감염경로가 불명확한 환자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지역사회 1차 방역망이 뚫려 우리 사회 어디에서든 코로나19 감염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확진자의 감염원을 찾지 못하는, 지역사회 감염 확산이 시작됐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이다.

◇ 장기전 가능성 배제못해…경증·중증 나눠 의료기관별 전달체계 정립해야
전문가들은 이런 국내 상황뿐 아니라 코로나19의 진원지인 중국과 홍콩, 싱가포르, 일본 등 우리나라와 교류가 많은 주변국에서 역학적 연결고리를 찾지 못한 지역사회 감염자가 계속 나오는 상황을 고려할 때 코로나19의 위기가 상당 기간 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일본은 지난 16일 기준 홋카이도·지바·가나가와·아이치·와카야마 등 최소 5개 현에서 감염경로를 추적할 수 없는 환자 사례가 확인됐다.

따라서 코로나19 상황이 안심할 단계가 아니기에 장기전에 대비한 대응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주문한다.

대한감염학회는 제2차 대정부 권고안에서 코로나19는 질병 특성상 사스나 메르스보다는 치명률이 낮지만, 전파력은 더 높은 만큼 최악의 경우 지역사회와 병원 내 대규모 유행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방역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무엇보다 장기화할지도 모르는 코로나19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코로나19 방역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진료가 필요한 국민이 병·의원에서 안전하게 진료받을 수 있게 의료체계를 구축,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료기관별로 코로나19 환자 선별과 경증 확진자 진료, 중증 확진자 진료, 일반 환자 진료 등 업무를 분담하는 분업체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보건소가 경증 의심 환자 선별 진료를 전담하고, 의료기관 응급실은 코로나19를 감별하는 역할을 맡도록 해 병원 내 확산을 차단하도록 함으로써 일반 환자가 안전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지자체별 공공의료원 등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해 코로나19 의심 환자와 경증 확진자 입원 진료를 담당하도록 하고, 국가지정격리병상 운영 병원은 중증 확진자 진료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코로나19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새로운 질병과의 싸움으로 장기전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소수의 의심 환자를 보건소나 선별진료소가 설치된 의료기관으로 안내해서 격리, 관리하는 지금까지의 봉쇄전략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의협은 지역사회 감염 징후가 뚜렷해지는 지금, 최전선에 서게 되는 1차 의료기관과 의료인이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분명한 지침과 대안을 제시하고 행정적 지원을 아까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