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165명·상이 후 사망 113명·행방불명 신고 242명…전부 조사대상
전쟁범죄 빼닮은 민간인 학살·계엄군 성폭행도 40년째 진실 찾기
[5·18 진실찾기 40년] ① 남겨둔 마침표…"왜 가해자는 없는가"

[※편집자주 = 5·18 민주화운동이 올해로 불혹(不惑)을 맞습니다.

5·18은 국가기념일 제정으로 역사적 의미를 세우고 신군부 처벌로 사법 판단을 얻었으나 진상규명이라는 마침표를 찍지 못했습니다.

모욕과 망언에 무수히 흔들려온 이유입니다.

특별법 제정에도 5·18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위원회 구성이 1년 넘게 걸린 이유이기도 합니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인 올해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연합뉴스는 조사위 활동에 앞서 진상규명의 방향을 짚어보는 기사 6편을 송고합니다.

발포명령자·헬기사격·민간인학살·집단암매장 등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거나 비틀려 있는 사안들과 북한군 개입 유언비어에 대한 조사 방향, 조사위 활동에 대한 시민의 호소와 당부 등을 담았습니다.

아울러 5·18을 직접 겪었거나 40년간 5·18을 곁에 두고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와 40년이 된 5·18에 바라는 그들의 마음을 전하는 인터뷰 시리즈 '당신의 5·18'도 매주 1차례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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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당시 계엄군 한명 한명이 자행한 반인륜 범죄를 낱낱이 밝힌 정부보고서는 40년이 지나도록 없다.

1988년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를 시작으로 아홉차례 국가 차원 조사 활동이 이어지고도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뒤늦게 태동한 배경이다.

◇ 모든 사망과 행방불명 '별건 조사'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고 7차례 심의에서 인정받은 5·18 사망자는 165명이다.

고문이나 부상 후유증으로 항쟁 이후 숨진 사망자는 113명이다.

[5·18 진실찾기 40년] ① 남겨둔 마침표…"왜 가해자는 없는가"

1980년 5월에 사라진 사람을 찾는 가족들이 광주시에 신고한 행방불명자는 242명에 달한다.

국가가 자행한 폭력으로 숨지거나 사라진 이들 모두 반인륜적 범죄의 피해자다.

희생자 일부 주검 상태는 1980년 작성한 사망자 처리 일지 등의 기록에 남아 있다.

칼에 찔리거나 심하게 두들겨 맞는 등 처참한 죽음이 빼곡하다.

뼈 한 조각조차 거두지 못한 행방불명자는 어떻게 숨졌고 시신이 어디로 갔는지 지금도 모른다.

곧 활동에 들어갈 5·18 진상규명조사위는 모든 사망과 행방불명을 개별 사건으로 분류해 살인·실종·암매장 과정을 추적한다는 구상이다.

행방불명자는 정부가 인정한 84명으로 제한하지 않고 신고된 인원 모두를 조사 대상에 포함할 방침이다.

[5·18 진실찾기 40년] ① 남겨둔 마침표…"왜 가해자는 없는가"

◇ 분풀이로, 어린이까지…잔혹한 학살
군이 민간인 다수를 한꺼번에 살해한 학살도 날줄과 씨줄을 엮듯 개별 사건과 함께 진상규명 범위에 넣었다.

조사위는 주남마을 미니버스 총격을 민간인 학살 사례 가운데 첫손에 꼽았다.

광주 외곽에 자리한 주남마을에서는 1980년 5월 23일 미니버스를 타고 화순으로 가던 시민이 공수부대의 무차별 총격을 받아 숨지는 일이 있었다.

15명이 현장에서 숨졌다.

공수부대는 희생자 가운데 10대 여성들의 시신을 날카로운 도구로 훼손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살아남은 부상자 3명 가운데 남성 2명은 마을 뒷산으로 끌려가 살해당했다.

훗날 한 공수부대원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이들을 총으로 쏴 죽이고 시신을 땅에 묻었다고 자백했다.

[5·18 진실찾기 40년] ① 남겨둔 마침표…"왜 가해자는 없는가"

미니버스 희생자 17명 가운데 8명은 아직도 시신의 행방을 알 수 없다.

5·18 연구자와 유가족은 도청 앞 집단 발포 후 시 외곽으로 물러난 계엄군이 여러 건의 유사한 학살을 자행했다며 진실을 요구한다.

언뜻 교통사고처럼 보이는 적십자 활동 차량 화재, 트럭 화재, 증언이 잇따르는 대형 고속버스 총격 사건을 이들은 지목한다.

군은 분풀이 목적으로도 전쟁 범죄에 가까운 학살을 자행했다.

5월 24일 송암동에서는 계엄군 간 전투가 벌어져 군인 9명이 죽고 33명이 다쳤다.

전교사 보병학교 교도대가 11공수여단 병력을 중무장한 시민으로 착각했다.

교전이 끝나고 공수부대원은 주변 민가를 뒤져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5·18 진실찾기 40년] ① 남겨둔 마침표…"왜 가해자는 없는가"

집 밖으로 끌려 나온 장정들이 처형당하듯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정확한 희생자 규모와 가해자를 밝혀달라는 요구가 40년째다.

계엄군은 오인 사격을 벌이기 직전 애꿎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총으로 쏴 죽이기도 했다.

놀이터에서 놀던 전재수(초등 4년) 군에게는 10발이 넘는 총탄 세례가 쏟아졌다.

저수지에서 멱을 감던 방광범(중등 1년) 군은 단발에 치명상을 입었다.

조준사격으로 추정한다.

◇ 가해자 어디에..계엄군 성폭력 조사 이어간다
여성을 노리개로 삼은 잔혹한 범죄도 비로소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5·18 진실찾기 40년] ① 남겨둔 마침표…"왜 가해자는 없는가"

수십년간 숨죽이며 살아온 피해자들이 증언에 나서자 국방부, 여성가족부, 국가인권위원회가 2018년 공동조사단을 꾸렸다.

공동조사단은 피해자가 최소 17명이며 여러 명의 군인이 번갈아 저지른 집단성폭행도 2건 이상 있었다는 결론을 냈다.

피해자 나이는 10대부터 30대였다.

학생, 주부, 직장인 등이었다.

상무대 영창 등으로 붙잡혀온 여성이 성적인 가혹행위를 당한 사례는 45건으로 드러났다.

공동조사단은 정부 공식 조사에서 처음으로 계엄군 성폭력 행위를 사실로 밝혀냈다.

강제할 권한이 없어 가해 당사자를 지목해 조사하지는 못했다.

남은 공은 5·18진상규명조사위에 넘겨다.

[5·18 진실찾기 40년] ① 남겨둔 마침표…"왜 가해자는 없는가"

송선태 5·18진상규명조사위원장은 "법률이 정한 진상규명 범위가 포괄적이고 구체성은 부족하나 제정 근간을 흔들지 않는 활동계획을 만들겠다"고 17일 말했다.

송 위원장은 "각계로부터 진상규명 요구 신청을 받고 있다"며 "예비조사와 전체회의를 거쳐 위원회 조사가 필요한 사건은 진상규명 범위에 추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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