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수급비 쪼갠 돈…첫째 임신때 시작, 두 아이도 용돈 '쨍그랑'
"기부는 돌고 도는 것…더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 생각하며 기부"
[#나눔동행]중증 장애인 부부의 11년째 기부…"적지만 꾸준히"
"장애인인 저희처럼 혹은 더 낮은 데 있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분들께 도움을 주고 싶어요.

"
대개 주머니가 넉넉해질 때까지 기부를 미루지만, 전북 전주에 사는 김규정(42) 씨 가족은 다르다.

김 씨는 선천적인 뇌병변 장애를 앓아 앉아 있기도 어려운 장애인이지만 기부에 적극적이다.

어릴 적 열병을 앓고 나서 지체 장애 판정을 받은 아내 홍윤주(38) 씨 역시 김씨와 생각이 다르지 않다.

부창부수(夫唱婦隨)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쏟아지던 차가운 시선을 서로 의지하며 이겨내던 부부는 첫아들 하람(11)이가 선물처럼 찾아오자 기쁨을 담아 5만원을 기부했다.

둘에게 5만원은 거금이었다.

김 씨는 "평소 마음먹어왔던 일이지만 기부를 결정하기까지 어려웠다"면서도 "곧 태어날 아들이 높은 데보다 낮은 데를 볼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기부했다"며 해맑게 웃었다.

이렇게 시작한 기부는 조금씩 금액이 더해져 11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들 부부는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 수당 150여만원 중 매달 1만2천원 정도를 모은다.

그리고 매년 12월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에 전한다.

"돈은 돌고 돈다는 말이 있잖아요.

기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기부도 위에서 아래로, 더 아래에서 조금 더 위로 순환할 거라고 믿어요.

"
[#나눔동행]중증 장애인 부부의 11년째 기부…"적지만 꾸준히"
김 씨의 굳은 믿음대로 따뜻한 마음은 첫째 하람, 둘째 하늘(7)에게도 전달됐다.

둘은 동네 어른들에게 용돈을 받으면 곧장 엄마·아빠가 기부금을 모아두는 돼지 저금통에 넣는다.

문구점을 기웃거리며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법도 하지만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부부는 이런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대견하다.

"아들들이 언제부터 저금통에 용돈을 넣기 시작했는지는 기억이 흐릿해요.

소중한 순간을 기억하지 못해 아쉽지만 그만큼 아이들이 기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생각해요.

"
가족이 이처럼 소중하게 모은 기부금은 김씨 뜻에 따라 3년여 전부터 홀로 사는 노인의 난방비로 쓰인다.

김 씨가 노인 난방비로 써달라고 주문한 것은, 그리운 존재였으나 원망하기도 했던 아버지를 생각해서다.

그는 인파로 붐비던 버스터미널 의자에 11살이던 자신을 두고 떠났던, 30년 전의 아버지 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부모님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더라고요.

두 분을 많이 원망했지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해요.

"
김 씨는 9년 전 부모님을 찾았다.

그러나 그를 버린 뒤 술로 지새우던 아버지는 간 경화로 세상을 떠난 상태였다.

이제 가장이 된 김 씨는 아버지가 짊어졌던 무게가 느껴진다고 한다.

"기부금은 옆 동네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께 전달됐다고 들었어요.

그분이 추운 겨울에 부디 따뜻한 방에서 지냈으면 좋겠어요.

"
[#나눔동행]중증 장애인 부부의 11년째 기부…"적지만 꾸준히"
장애에 굴하지 않고 따뜻한 가정을 일구며 아이들과 함께 더 낮은 곳을 보살피기 위해 기부활동을 꾸준히 해온 이들에게 지인들은 자주 "대단하다"는 격려를 건넨다.

그럴 때마다 아내 홍 씨는 "부끄럽다.

금액이 많지도 않은데 주변에서 대단하다고 하니까 정말 어쩔 줄을 모르겠다"며 수줍게 웃는다.

침대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김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마치면서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기부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