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재판 등 영향 '주목'
"무리한 기소" "제식구 감싸기"
'사법농단 판사' 줄줄이 무죄…"재판 개입했지만 처벌 못해"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일선 판사들의 재판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부적절한 재판 개입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애초에 임 부장판사에게 재판에 관여할 ‘직권’이 없기 때문에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취지다.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피고인들이 줄줄이 무죄를 선고받아 의혹의 ‘핵심’이자 ‘정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법농단 판사' 줄줄이 무죄…"재판 개입했지만 처벌 못해"

“법관 독립 침해는 맞지만 형사처벌 안돼”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송인권)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임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임 부장판사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임 부장판사는 2014~2016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재직 시절 중앙지법 판사들의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임 부장판사가 법원행정처의 지시를 받아 2015년 3~12월 ‘세월호 7시간’ 관련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에 청와대 입장이 적극 반영되도록 담당 재판장을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2015년 8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체포치상 사건에서는 판결문의 일부 표현을 수정하도록 지시하고, 2016년 1월 원정도박 사건에 연루된 프로야구 선수 임창용·오승환 씨 사건을 약식명령으로 종결하도록 권유한 혐의도 있다.

법원은 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 행위가 위헌적이지만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사안은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형법 제123조의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가진 직무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그 권한을 위법·부당하게 행사할 때 성립한다”며 “법관 독립의 원칙상 법원장을 보좌하는 수석부장판사에게는 일선 판사의 재판 업무에 관여하거나 지시할 직무권한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임 부장판사의) 재판 관여 행위는 본인의 지위나 개인적 친분을 이용해 법관 독립을 침해한 위헌적 행위는 맞다”면서도 “이를 징계 사유로 볼 여지는 있어도 직권남용죄로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설령 임 부장판사에게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직권남용의 피해 당사자인 법관들이 영향을 받지 않아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1심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이모·최모 부장판사, 김모 판사 등은 법정에서 피고인의 요청을 무조건 따르지 않고 자신의 법적 판단 및 동료 판사들의 의견을 듣고 독립적으로 결정했다고 증언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날 판결 직후 “재판 독립의 원칙상 재판 개입이란 직권이 존재하지 않아 처벌할 수 없다면 앞으로 인사권자나 상급자의 어떠한 재판 관여도 처벌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양승태·임종헌 1심도 ‘청신호’

지금껏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법관들에게 모두 무죄가 선고됨에 따라 법조계의 관심은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재판으로 쏠리고 있다. 전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정운호 게이트’ 관련 영장 기록을 법원행정처에 유출한 혐의를 받는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에게 “통상적인 사법행정 절차의 일환”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시절 박근혜 대통령 비선 의료진의 재판 상황을 청와대에 유출한 혐의를 받는 유해용 변호사도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들 혐의는 임 전 차장을 거쳐 박병대·고영한 법원행정처장, 양 전 대법원장까지 공소사실에 포함돼 있다.

법조계에선 애초 검찰이 ‘적폐수사’ 명분에 몰두하느라 지나치게 정치적인 기소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죄가 되지 않는 사안을 무리하게 수사해 법원에 ‘적폐’ 낙인을 찍어버렸다는 지적이다. 반면 법원 내부에서 벌어진 비위행위에 대해 스스로 재판하는 법원이 과연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현직에 있는 동료 판사들을 재판해야 하는 판사들이 과연 공명정대하게 판단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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