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 /사진=연합뉴스
최영미 시인 /사진=연합뉴스
"그는 원래 평범한 돼지였다/감방에서 한 이십 년 썩은 뒤에/그는 여우가 되었다 <중략> 냄새나는 돼지 중의 돼지를/하늘에서 내려온 선비로 모시며//언제까지나 사람들은 그를 찬미하고 또 찬미하리라./앞으로도 이 나라는 그를 닮은 여우들 차지라는/오래된 역설이…… 나는 슬프다." -시 '돼지의 변신' 중에서

시인 최영미 시인이 시집 '돼지들에게'가 출간된지 15년 만에 오랜시간 논란이 돼 왔던 '돼지'들에 대해 입을 열었다.

지난 11일 최 시인은 서울 마포구 카페에서 '돼지들에게'(이미출판사) 개정증보판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2005년 초판을 낸 이후 '돼지들에게'의 소재가 누구인지 문단에선 많은 의혹과 논란이 불거져왔다.

최영미 시인은 간담회에서 "2005년 그 전쯤 문화예술계 사람을 만났다. 그가 돼지의 모델"이라고 밝혔다.

이어 "문화예술계에서 권력이 있고 한 자리를 차지한 인사", "승용차와 기사가 딸린 차를 타고 온 사람" 등으로 묘사했다.

최영미는 이 인사에게 "성희롱까지는 아니지만 여성에 대한 편견이 담긴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 밖에 더 자세한 설명을 했지만 보도를 원치 않았다.

뿐만 아니라 최 시인은 또 다른 성추행 경험을 언급하기도 했다. 1987년 대통령 후보였던 백기완의 선거캠프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것.

그는 "선거철에 합숙하며 24시간 일했고 한 방에 스무명씩 겹쳐서 자는데 불쾌하게 옷 속에 손이 들어왔다"고 했다.

또 "그 단체 안에서 심각한 성폭력이 있었다. 학생 출신 외 노동자 등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었고 회의를 느꼈다"고 토로했다.

최영미는 피해 사실을 알리려고 했으나 한 여 선배가 "운동을 계속하려면 이보다 더 심한 일도 참아야한다고 말렸다"고 했다.

백기완은 1987년의 제13대와 1992년의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중도사퇴하거나 낙선하기도 했다. 그는 1974년 유신헌법 개헌을 주장하다 '긴급조치 1호' 첫 위반자로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2013년 39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현재 정치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를 맡아 재야에서 계속 통일운동과 진보적 노동운동에 관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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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시인은 또 "한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어느 교수"와 술자리를 갖고 택시를 함께 탔을 때 자신을 "계속 만지고 더듬고 했던" 일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번 개정증보판에는 착한 여자의 역습', '자격' 등 신작 시 3편을 추가했다.

신작 시 중 'ㅊ'은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대상인 고은 시인과의 소송과 연관이 없지 않아 원래 시에서 제목 등이 바뀌었다고 한다. 최영미는 "(소송이) 다 끝났지만, 상대측을 자극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 밖에 최영미는 최근 이상문학상 거부 사태에 대해 "뿌듯하다. 미투가 없었다면 그게 가능했을까"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최영미 시인은 자신의 시 ‘괴물’에서 원로 문인 고은을 암시하며 과거 성추행 행적을 고발한 사실이 지난 2월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시 ‘괴물’에는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등의 표현이 들어 있어 '미투' 운동을 촉발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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