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한 방울에서 시작된 나눔…부산 초록봉사단 단장 이재형 씨
40년간 300회 헌혈 최고명예대장…12년 세월 한결같은 연탄 나눔
[#나눔동행] "가진 게 많지 않아 더 돕지 못하는 것이 미안해"
"여러분이 연탄 한 장입니다.

"
따뜻한 아랫목이 없는 겨울은 더 춥고 더 길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도시가스나 등유를 연료로 쓰는 보일러가 보편화한 요즘에도 하루 연탄 3장의 온기가 절실한 사람들이 있다.

칼바람이 불어 체감기온이 영하권을 넘나들던 8일 오전 부산 부산진구 개금3동 '새마을동네'.
부산지역 봉사단체인 '초록봉사단' 회원들과 한 지역기업 신입사원 등 10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유치원생부터 중년 아저씨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그들 뒤로 주민들에게 전달할 연탄 2천800장이 놓여있었다.

[#나눔동행] "가진 게 많지 않아 더 돕지 못하는 것이 미안해"
100여가구가 사는 새마을동네는 부산 최대 번화가인 서면과 불과 10분 거리에 있다.

하지만 새마을동네에는 도시가스 공급이 안 된다.

주민 대부분이 여태 연탄보일러를 쓴다.

부산진구에서도 낙후한 지역으로 손꼽힌다.

주민 평균 연령은 60대 이상.
초록봉사단은 새마을동네 등 부산진구를 중심으로 올해로 12년째 연탄 나눔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재형(60) 초록봉사단 단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한파 속에서도 각자 마스크를 착용한 채 봉사활동에 동참한 사람들에게 연신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이날에는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자동화 센서 제조업체인 '오토닉스' 신입사원 20명이 연수프로그램의 하나로 연탄 나눔에 자발적으로 나와 그 의미를 더했다.

이 단장은 "추운 날씨 속에 모여준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 따뜻한 한 장의 연탄이기에 주민들이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눔동행] "가진 게 많지 않아 더 돕지 못하는 것이 미안해"
10년 이상 이어져 온 연탄 나눔이기에 작업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연탄 100장을 실은 리어카가 골목길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하면 서로 마주 보며 늘어선 봉사자들이 두손을 쉴 새 없이 움직여 연탄창고로 연탄을 옮겼다.

텅 빈 연탄창고는 순식간에 검은빛이 선명한 연탄으로 가득 찼다.

장갑 낀 봉사자들 손이 금세 검게 변했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연탄 2장이 한 세트로 들어가는 보일러 화덕 불꽃은 세차게 타올랐고, 처마 아래로 튀어나온 연통 입구에서는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나눔동행] "가진 게 많지 않아 더 돕지 못하는 것이 미안해"
삼삼오오 모여 이들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공터에 장작불을 지피고 커다란 솥을 올려 떡국을 만들 멸치 육수를 내기 시작했다.

40년째 새마을동네에 살고 있다는 주민 김강자(61) 씨는 "이 추운 날씨에 연탄을 나눠 주겠다고 모여준 분들께 떡국 한그릇이라도 대접하고 싶어서 나왔다"며 웃었다.

초록봉사단 연탄나눔은 '피 한 방울'에서 시작됐다.

혈액 수급이 원활하지 않던 2000년 부산에는 백혈병 어린이를 위한 정기 헌혈자 모임인 '수호천사봉사단'이 있었다.

헌혈 베테랑인 멤버들은 헌혈의 집에서 기념품으로 받은 문화상품권을 책이나 음반을 사는 데 쓰지 말고 연탄 나눔을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그렇게 시작된 활동이 매년 이어졌고, 이 단장을 비롯한 원년 멤버들은 초록봉사단을 조직해 무료급식과 연탄 나눔을 꾸준히 계속하게 됐다.

이들의 활동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오토닉스와 같은 지역기업이 먼저 연락해 도움의 손길을 보태기도 한다.

[#나눔동행] "가진 게 많지 않아 더 돕지 못하는 것이 미안해"
연탄 나눔에 동참한 오토닉스 신입사원 김경미(27) 씨는 "적은 연탄 몇장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힘이자 따뜻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며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초록봉사단을 이끄는 이재형 단장은 생업인 떡방앗간을 최근 정리하고, 백수가 된 평범한 동네 아저씨다.

가진 게 많지 않아 지역 소외계층을 더 많이 돕지 못하는 것이 늘 안타깝고 미안하다.

그는 부산에서 '생수천사'와 '헌혈왕'으로 유명하다.

4년 전 여름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 자신이 살던 아파트 경비실에 찾아오는 택배기사나 집배원 등을 위해 얼린 생수를 무료로 나눠주는 '무료 생수 보급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인근 식당과 은행에서도 생수 나눔에 동참하는 등 지역사회에 큰 감동을 줬다.

[#나눔동행] "가진 게 많지 않아 더 돕지 못하는 것이 미안해"
이 단장은 40여년 전인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헌혈을 시작해 부산적십자사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 다회 헌혈자다.

그는 당시 길을 걷다가 헌혈 차량 창문에 붙은 '혈액이 많이 모자랍니다.

B형 혈액형 급구'라는 문구를 보고 주저 없이 헌혈 차량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시작한 헌혈은 군대에 가서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계속돼 40년 넘게 꾸준히 이어졌다.

그는 2018년 3월 29일 300회를 돌파해 적십자사가 헌혈 유공자에 주는 '최고명예대장'도 받았다.

이 단장은 헌혈하려고 이미 30여 년 전에 술도 끊었다.

전날 술을 마시면 그다음 날 헌혈을 못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눔동행] "가진 게 많지 않아 더 돕지 못하는 것이 미안해"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그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이유로 동네 주민들은 물론 처음 만나는 분도 웃으면서 제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 격려도 해주신다"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