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3개월 만에 복구공사 완료하고 국민 품으로 돌아와
[순간포착] 억장 무너진 '국보 1호' 숭례문 화재 붕괴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48분께 숭례문 누각 2층 지붕에서 흰 연기와 함께 빨간 불길이 솟아올랐다.

화재 초기여서 쉽게 진화할 것 같았고, 실제 이내 잡힌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하지만 불길은 기왓장 밑에 살아있었다.

그것이 이내 다시 커져서 불길은 걷잡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자정을 넘겨 0시 25분께 2층 누각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고, 30여분 뒤 지붕 뒷면이 붕괴하기 시작해 1시 5분께는 2층 지붕 3분의 1가량이 무너졌다.

이어 1시 55분께는 누각을 받치고 있던 석반만 남긴 채 지붕을 포함한 목조건축물 2층은 완전히 붕괴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연합뉴스가 2008년 2월 11일 1시 55분 27초에 발행한 '국보 1호 붕괴'란 제목의 사진에는 "11일 새벽 숭례문이 화재로 일부 무너져 내리고 있다"란 설명이 붙어 있다.

사진을 보면 커다란 화염과 거대한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 가운데 문루가 처참하게 무너져내리고 있다.

화재 진압을 위한 물줄기가 사방에서 누각으로 집중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당시 연합뉴스는 사진기자 5명을 투입해 화재 초기부터 새벽 5시께 진화까지 국보 1호가 화마에 몸부림치다 쓰러지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숭례문 화재가 얼마나 큰 사건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순간포착] 억장 무너진 '국보 1호' 숭례문 화재 붕괴

문화재 지정 번호가 관리번호에 불과하지만, 그 '국보 1호'가 지닌 상징성은 그만큼 컸다.

숭례문은 대한민국, 좁히면 서울의 상징과도 같은 대표 문화재다.

이날 숭례문 붕괴와 함께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도 무너져내렸다.

그 타는 모습에 울음을 참지 못한 시민이 아주 많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한국전쟁도 굳건하게 견딘 성문이 새까만 잿더미로 변한 모습에 시민들은 탄식하고 망연자실했다.

하얀 국화꽃을 놓으며 숭례문을 위로하는 발걸음도 이어졌다.

숭례문을 전소시킨 사람은 당시 70세 채모 씨였다.

10일 오후 8시 45분께 숭례문 2층 누각에 올라가 1.5ℓ 페트병에 준비해온 시너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2년 전 창경궁 문정전에도 불을 지른 방화범이었다.

범행동기는 황당했다.

주거지 재건축 때 보상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며 지자체와 대통령 비서실에 제기한 민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창경궁 방화사건에서 억울하게 처벌을 받았고, 관련 민사소송에서 패소해 1천300만원을 내게 됐다는 게 이유였다.

엉뚱한 문화재에다가 화풀이를 하는 전형적인 반달리즘(vandalism) 행태 중 하나였다.

한양도성 정문 역할을 했던 숭례문은 조선왕조가 한양 천도 후인 1395년(태조 4년)에 도성 남쪽 목멱산(남산)의 성곽과 만나는 곳에 짓기 시작해 1398년 완성했고 이후 600여년간 몇 차례 보수를 거쳤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양 끝으로 이어지던 성곽이 허물어지며 문의 역할을 마감했다.

화재 붕괴 이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숭례문은 5년 3개월간 복구작업을 거쳐 2013년 5월 4일 국민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순간포착] 억장 무너진 '국보 1호' 숭례문 화재 붕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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