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김순자씨, 군부대·요양원·복지관 다니며 '사랑 나누기'

"팔순을 앞둔 나이지만 봉사활동을 이어오다 보니 나이 먹는 것도 잊었습니다.

"
설 연휴를 지낸 지난달 29일 경기도 고양시 원흥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만난 김순자(78) 할머니. 고교에 들어가면서 미용계에 발을 디딘 이래 60년간 '가위손'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미용 봉사활동을 26년째 이어온 이력의 소유자다.

[#나눔동행] 60년 '가위손' 인생에 이·미용 봉사만 26년째
경북 김천이 고향인 그가 미용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의 영남여자고등기술학교에 들어가면서다.

당시 친구들은 대부분 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김씨는 요즘으로 치면 특성화 고등학교인 이 학교 미용반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는데 주산·부기는 배우기 싫었고, 취업이 잘 되는 미용기술이 배우고 싶어 대구의 미용학교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술학교에서 미용 자격증을 취득하고 곧바로 취업을 할 수 있었다"면서 "1년여 동안 미용, 피부, 파마, 컷 등을 밤낮없이 실습했고, 그때까지도 내 손기술이 좋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막상 졸업 시기가 다가오자 학교 선생님이 김씨에게 "미용학원의 교사를 해보라"는 권유를 했지만, "배워야 할 게 더 많다"며 거절했다고 했다.

졸업을 하자마자 대구의 한 미용실에 취업한 김씨는 그동안 노력해온 만큼 손재주가 좋다는 소문이 금방 났다.

소문은 김씨의 고향 김천까지 퍼졌다.

"김천에 미용실까지 준비를 다 했는데, 맡아서 할 사람이 없다"는 지인과 부모님의 설득에 대구에서 6개월 만에 고향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천에서 자리를 잡았지만, 당시 장발 유행 등으로 영업은 갈수록 힘들어졌다.

때마침 서울에 살던 언니가 "서울 대학가에서 미용실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 1963년 서울 서대문구 신촌으로 이사를 했다.

서울 생활은 김천과 달리 비교적 순탄했다.

빚을 내 마련한 작은 방 하나가 달린 미용실에서 밤낮없이 열심히 일한 결과, 3년여 만에 빚을 다 갚게 됐다.

30년 동안 서울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집도 마련하고 돈도 많이 벌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1993년 1월 고양시 덕양구로 미용실을 이전했다.

서울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며 함께 일하던 직원 10명을 모두 데리고 고양시로 간 것이다.

미용실 이전과 함께 후학 양성을 위해 미용 학원도 설립했다.

오전, 오후, 야간 3개 반에 120명이 정원이었는데, 항상 수강생들로 붐볐다.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강의도 직접 해야 했다.

수강생들의 연령도 다양했다.

여고생부터 전문대생, 이직을 준비 중인 직장인, 주부 등.
수강생들은 자격증 취득을 해야 취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책임감이 컸다고 했다.

그는 "수강생들이 자격증을 취득해야 밥벌이를 하잖아. 자격증을 따지 못하면 너무 미안해서 내가 공부할 때 보다 더 강도 높게 가르친 것 같다"고 전했다.

이론 수업은 완성도 높게 가르쳤지만, 실습이 문제였다.

수강생들이 처음에는 가발로 머리를 손질하는 연습을 하는데, 실제로 실습을 할 대상이 필요했다.

아이디어를 찾다가 인근 군부대에서 수강생들을 데리고 이발 봉사를 기획했다.

그가 이·미용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1993년 3월부터 월 4차례 고양시 인근 부대를 찾아 장병들을 대상으로 무료 이발 봉사를 시작했다.

군부대뿐만이 아니다.

고양 시내 복지관과 요양원, 형편이 안 되는 주민들을 찾아 무료로 이·미용 봉사를 진행했다.

[#나눔동행] 60년 '가위손' 인생에 이·미용 봉사만 26년째
봉사 활동을 진행하면서 수강생들의 실력도 점점 향상됐다.

당시 많게는 한 달에 8번 미용 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김씨는 "당시 고양지역의 군부대는 모두 찾아가 미용 봉사를 진행했다"며 "한번 시작한 미용 봉사를 멈출 수가 없어 미용학원을 폐업할 때까지 이어져 부대장들로부터 감사장도 많이 받았다"고 자랑했다.

미용실과 미용 학원을 병행하던 김씨는 50대 중반이던 1996년에 미용실을 폐업했다.

당시만 해도 서울과 고양시를 오가는 교통편이 좋지 않아 서울서 출·퇴근하던 직원들이 하나둘 그만두던 터에, 남은 기간 후배들을 더 양성하면서 봉사 활동에만 집중하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김씨는 1990년대 말 국내에 닥친 국제금융 위기 속에서도 후학들을 위해 열정을 쏟았다.

그는 "금융위기가 시작되면서 대기업들이 하루가 멀다고 부도가 날 때인데 수강생들이 줄지 않고 더 늘었다"면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학원을 찾아온 수강생들을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해 가르쳤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던 2003년까지 120명이던 수강생 정원을 이듬해부터는 절반으로 줄였다.

2004년부터 고등학교와 대학에서도 뷰티 및 미용 관련 학과가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신설 학과가 생겨났지만, 김씨의 손기술은 퇴색하지 않았다.

주변 학교에서 특강과 실습을 김씨에게 부탁할 정도였다.

2013년 김씨가 학원을 폐업할 때까지도 수강생들과의 군부대, 요양병원 봉사활동은 이어졌다.

김씨가 가르친 제자들만 5천여명이 넘는다.

미용학원을 폐업한 김씨는 고희가 지난 지금에도 월에 1∼2회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인근 복지관에서 이·미용 봉사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김씨는 2018년부터 복지관에서 1주일에 한 번 한국 무용 수업과 한자 수업을 들으며 요즘 또 다른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가위를 잡은 지 60년 만에 자신의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된 것이다.

지난해부터는 한 종교시설을 찾아 복지관에서 만난 친구들과 1년간 갈고 닦은 무용 재능 기부 공연을 펼쳤다.

그리고 지난해 3월에는 한자 실력 급수(5급) 자격증을 취득했고, 7월부터 최근까지는 하모니카 수업에 푹 빠져있다.

[#나눔동행] 60년 '가위손' 인생에 이·미용 봉사만 26년째
올해에는 하모니카 연주로 이웃을 위해 공연 봉사를 하는 것이 새로운 목표다.

김씨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봉사활동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봉사를 통해 건강도 챙기고,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올 수 있어 얻는 것이 참 많아 힘닿는 데까지 봉사활동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