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제주 4·3·한국전쟁…무대에 펼쳐지는 역사의 소용돌이
신종코로나에 관객 상당수 마스크 쓰고 관람
비극적 역사에 먹먹해지다…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눈이 꽃잎처럼 휘날리는 지리산. 한 발의 총성이 들리고 여인이 쓰러진다.

이어서 두 남자가 오열한다.

시간은 과거로 향하고 특수간첩행위로 체포된 윤여옥에 대한 재판이 열린다.

군중들은 "이제 속지 않아, 두 번 다시는… 반역자를 처단하라!"라고 외치며 분노를 쏟아낸다.

여옥은 검사가 제시하는 거짓 증거들을 마주하며 과거를 회상한다.

16살 꽃다운 나이에 고향 남원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여옥은 학도병으로 난징대학살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최대치를 만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더 험난한 시련과 비극이 그들 앞에 펼쳐진다.

주인공들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제주 4·3을 거쳐 한국전쟁까지 거대한 파도 같은 현대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다.

비극적 역사에 먹먹해지다…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지난달 23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비극적인 근현대사 속에서 질곡의 세월을 보낸 세 남녀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국민 드라마'로 꼽히는 동명 드라마(1991)를 원작으로 한다.

작품은 일제강점기인 1943년 겨울부터 10년의 격변기를 다룬다.

일본군 위안부 '윤여옥', 조선인 학도병 '최대치', 군의관으로 전쟁에 끌려온 '장하림' 세 남녀의 삶을 통해 아픈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

지난달 3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서는 일본군 위안부와 학도병, 해방 전후의 이념 갈등, 제주 4·3, 한국전쟁 등 하나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비극적인 역사가 쉼 없이 펼쳐지며 관객을 숨죽이게 했다.

특히 어제까지 형제, 자매였던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의 목숨을 빼앗는 제주 4·3 장면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노성우 연출이 지난달 30일 프레스콜에서 "이념 갈등의 출발이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듯 작품은 지금도 벌어지는 광장과 거리에서의 갈등 상황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비극적 역사에 먹먹해지다…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무대는 작품 성격에 맞게 화려함을 배제했다.

대신 위안소, 철조망, 녹슨 난간, 낮은 돌담 등으로 서사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경사진 무대는 입체감을 더하며 몰입도를 높이고, 계단식으로 제작한 무대 앞쪽에서 배우들이 등장·퇴장하고 연기하는 모습은 색다른 느낌을 준다.

무대 뒤편 대형 스크린에서는 서울, 난징, 상하이, 하얼빈, 사이판, 제주, 지리산 등을 상징하는 영상이 흘러나오며 생동감을 더한다.

귀를 사로잡거나 전율시키는 넘버(노래)는 별로 없지만, 해방 후 대치와 재회한 여옥을 떠나보내며 하림이 부르는 '행복하길'은 무척 절절하게 다가온다.

이날 관객 상당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착용한 채 관람했다.

로비에 설치된 자동세척분사기로 손을 소독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세종문화회관은 손 자동세척분사기, 세정제, 마스크 등을 공연장 곳곳에 비치하고, 입구에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했다.

공연 시간은 인터미션 15분을 포함해 160분이다.

오는 27일까지 공연한다.

비극적 역사에 먹먹해지다…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