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 화가 황영준 그림 전시회 찾은 막내딸 '눈시울'
"불발된 이산가족 상봉…아버지 유작 보며 한 풀었다"

충북 청주에 사는 황명숙(73) 할머니는 1950년 한국전쟁 때 이별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줄 알았다.

3살 때 헤어져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매년 제사까지 지냈다.

아버지가 북한에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40대 중년이 됐을 무렵이었다.

황씨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이산가족 상봉의 문을 두드렸다.

2002년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 어렵사리 상봉의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끝내 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다.

상봉을 앞두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황씨의 아버지 화봉(華峯) 황영준(1919~2002)은 1988년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은 북한 최고의 조선화가다.

충북 옥천에서 태어난 황영준은 이당 김은호에게 그림을 배웠고, 1950년 한국전쟁 도중 알 수 없는 이유로 월북했다.

남쪽에는 2남 2녀를 뒀다.

황명숙 할머니는 4남매 중 막내다.

다시는 기회가 없을 줄 알았던 아버지와의 상봉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뜻밖에 찾아왔다.

고인이 된 아버지가 그린 유작이 남한 땅으로 온 것이다.

이달 10일부터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아버지의 유작이 전시된다는 소식을 접한 황씨는 전시회 개막식 당일 남편, 외손자와 함께 찾아와 아버지의 그림과 마주했다.

황명숙씨는 24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죽기 전에 아버지의 그림을 볼 수 있을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백두산을 비롯한 북한 자연을 담은 풍경화와 그네뛰기 같은 일상을 묘사한 작품 등 황영준의 유작 200여점이 공개됐다.

이번 전시회는 북에서 남에 두고 온 자식들을 그리워했던 황영준의 한을 풀어준 것이기도 하다.

"불발된 이산가족 상봉…아버지 유작 보며 한 풀었다"

황영준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남에 두고 온 자식들을 만날 날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는 남쪽 가족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북에서는 결혼하지 않았다.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앞둔 시점에 남한의 혈육에게 줄 선물 보따리를 놓고 양아들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은 자식을 향한 그리움을 보여준다.

황영준이 눈을 감기 1년 전인 2001년 3월 가족들에게 남긴 한 통의 편지에도 자식을 향한 그리움이 절절히 담겨 있다.

황명숙씨는 아버지가 사망한 후 적십자사로부터 받았다는 편지를 전시회장에서 공개했다.

'그리움에 애타게 부르고 또 부르는 내 아들 문웅, 인호야. 귀엽고 사랑스러운 내 딸 혜숙, 명숙아. 무정한 이 사람을 기다리며 네 남매 키우느라 백발이 되었을 귀중한 로친(노친)이 정말 보고 싶고 그리웠다'.
황영준의 동생인 황석중(90)씨도 이달 중 충북 옥천에서 아내와 함께 형을 만나러 인천의 전시회장을 찾을 계획이다.

이때 황명숙씨는 외손자 4명과 동행하기로 했다.

"불발된 이산가족 상봉…아버지 유작 보며 한 풀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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