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으로 늘 허리 90도로 굽히고 다녀…주민·구청 관심에 건강 회복
절망에 짓눌렸던 신림역 노숙인, 주민들 도움으로 새 삶
"그만 눌러! 날 누르지 마! 괴롭히지 마!"
정신질환 때문에 척추에 장애가 있는 것처럼 늘 허리를 굽히고 소리를 지르며 거리를 헤맸던 노숙인이 이웃 주민과 공무원들의 지속적인 관심 덕분에 다시 사회로 돌아올 기회를 얻었다.

24일 서울 관악구에 따르면 50대 여성 노숙인 A씨는 정신질환을 앓으며 신림역 주변 거리에서 살아왔다.

그는 환청·환각 증세인 듯 혼잣말과 고함치기를 반복한 탓에 지인의 도움으로 살고 있던 고시원에서 2016년께 쫓겨났다.

척추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데도 정신적 문제 때문인지 늘 허리를 90도 넘게 굽힌 상태로 다녔다고 한다.

그를 담당한 신림동 주민센터의 복지담당 공무원은 "A씨는 무엇인가가 자신을 누르고 있다고 소리치곤 했다"며 "그 가상의 무게 때문에 허리를 굽히고 다닌 것 같다"고 떠올렸다.

심할 때는 손으로 땅을 짚고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그 때문에 신림역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눈여겨본 적이 있을 정도였다.

거처를 마련해주려고 해도 씻지 않아 냄새가 나는 것은 물론 소리를 지르니 고시원들이 거부했다.

숙박비는 A씨의 기초생활수급비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A씨 자신도 도움의 손길을 내치기 일쑤였다.

A씨는 버스정류장, 상가, 골목 등을 전전하며 숙식했고 개인 용무마저 거리에서 해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A씨의 처지를 보다 못한 주민들이 나섰다.

어묵 가게, 구둣가게 등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이웃들이 음식이나 각종 생필품을 전달했고, 한 주민은 동 주민센터에 A씨를 도와달라고 직접 연락하기도 했다.

주민센터 공무원은 "A씨는 누가 봐도 정신적 문제를 앓는 사람이라 주민들이 더 안타깝게 여긴 것 같다"고 말했다.

A씨 사안을 놓고 고민한 신림동 주민센터는 어디든 그가 있는 곳으로 자주 찾아가 안부를 물으며 신뢰를 쌓는 일부터 시작했고, 정신보건센터에 의뢰해 정신상담도 진행했다.

특히 지난해 9월 한 여관 주인이 소리를 질러대는 그를 위해 빈방의 옆방을 내어줘 거처가 생기면서 돌파구가 열렸다.

안정을 찾은 A씨는 주민센터의 도움으로 병원에 다니기 시작해 지난해 11월께부터는 허리를 펴고 다닌다고 한다.

구 관계자는 "A씨는 이제 소리를 지르지 않고, 이웃과 잘 어울리며, 무엇보다 굽혔던 허리를 곧게 펴고 다닌다"고 전했다.

구는 앞으로 임대주택 등 A씨에게 제공할 수 있는 복지 서비스를 더 찾아내 지원할 방침이다.

박준희 관악구청장은 "차가운 길거리에서 생활하던 A씨가 주변 이웃들의 사랑으로 새 희망을 찾았다"며 "새해를 맞아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촘촘한 복지안전망 구축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