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경찰이 피의자 없는 데서 증거 수집해 불법"

여성 불법 촬영에 사용된 휴대전화를 경찰이 무단 압수했다는 이유로 법원이 성범죄 사건에 대해 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경찰이 압수한 휴대전화를 탐색하는 과정에 피의자를 참여시키지 않아 적법한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의정부지법 형사1부(오원찬 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과 건조물 침입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A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고 22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5월과 6월 두 차례 여자 화장실에 몰래 들어가 불법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며, 1심은 두 건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6월 사건에 대해서만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형은 1심과 같은 벌금 600만원을 선고했다.

"무단 압수한 휴대전화는 증거 안 돼"…성범죄에 또 무죄
법원에 따르면 A씨는 2018년 6월 새벽 시간대 여자 화장실에 몰래 들어가 휴대전화로 여성을 촬영하려다 현장에 붙잡혔다.

피해 여성이 소리를 지르자 화장실 근처에 있던 지인이 A씨를 붙잡아 휴대전화를 빼앗은 뒤 경찰에 넘겼다.

경찰이 현장에서 휴대전화를 검색했으나 아무것도 없었고 A씨는 "실수로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 것뿐"이라며 불법 촬영을 부인했다.

그러나 경찰은 사이버범죄수사대에 디지털증거분석을 의뢰, 한 달 전인 5월 여자 화장실을 불법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동영상을 찾아냈다.

이를 근거로 A씨에게 두 건에 대한 자백을 받았다.

경찰은 이 동영상을 캡처해 증거로 첨부했고 A씨는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불법 촬영 두 건 모두 유죄로 인정해 벌금 600만원을 선고했으나 항소심은 A씨가 없는 상태에서 증거가 수집된 5월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정보 저장매체 압수수색에서도 피의자 참여 절차가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며 "휴대전화에 저장된 개인정보의 막대함과 민감성까지 고려하면 참여 필요성은 배가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휴대전화를 탐색했거나 피의자가 증거에 동의했더라도 피의자가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집된 증거는 위법해 법정에서 인정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휴대전화 압수 과정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대법 판례에 따르면 경찰이 현행범 체포 때는 영장 없이 물건을 압수할 수 있고 사후 영장도 받을 필요 없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피해 여성의 지인이 붙잡은 피의자를 경찰이 휴대전화와 함께 넘겨받은 만큼 사후 영장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며 "피의자가 검거 당시 휴대전화 제출을 스스로 동의했다고 보기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 재판부는 지하철역에서 여성을 몰래 촬영한 피의자와 마약 투약 피의자에 대해 경찰이 적법한 절차로 증거를 수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잇따라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