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사업에 거주민 인권영향평가 도입 필요…개발이익 환수해 세입자 보상해야"
[용산참사 11년] ② 강제진압 없어졌지만…아직 갈 길 먼 세입자 대책
11년 전 6명의 사망자를 낸 용산 참사를 계기로 도시개발 현장을 둘러싼 법과 제도도 일부 바뀌었다.

개발사업과 관련한 갈등 현장에서 세입자 등에 대한 경찰의 강제진압은 사실상 사라졌다.

경비용역업체 허가를 까다롭게 하고,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감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경비업법도 개정됐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상 철거지역 상가 세입자의 휴업보상금은 3개월 치에서 4개월 치로 늘어났다.

서울시는 2013년 '주거시설 등에 대한 행정대집행 인권 매뉴얼'을 만들어 거주민 퇴거가 완료된 이후 철거를 진행하도록 하고, 겨울철이나 악천후 등 상황에서는 철거를 금지했다.

그러나 개발사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세입자와 개발자 간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가장 실효성 있는 제도로 거론되는 강제퇴거 제한에 관한 특별법(강제퇴거금지법)은 아직 입법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강제퇴거금지법은 재개발 등 퇴거를 수반하는 개발사업을 할 때 교통영향평가나 환경영향평가처럼 사전에 인권영향평가를 해 거주민들의 인권에 미칠 영향을 파악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본격적인 철거가 이뤄지기 전에 용역들이 상주하면서 벽에 낙서하거나 빈집에 쓰레기를 버리는 등 행동으로 주민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하는 '철거예비행동 금지' 조항도 담겼다.

이 법안은 용산참사 이후 지난 18·19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으나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도 안 된 상황이다.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19일 "건축물을 지을 때 교통이나 환경에 미칠 영향은 미리 평가해 대책을 마련하게 하면서 거주민 인권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강제퇴거금지법이 아니더라도 다른 개발사업 관련 법안에 인권영향평가 의무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개발사업 이익을 환수해 기존 세입자들을 위한 대책에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재개발 등 개발사업은 통상 낡은 건물을 없애고 공공 재산인 용적률을 활용해 새 고층 건물을 올려 이익을 얻는 것인 만큼 이익을 제대로 환수해 기존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금도 개발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을 통해 재개발 사업에서 개발 이익을 일정 부분 환수하고 있다.

그러나 시세보다 훨씬 낮게 평가되는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이익이 산정되고 환수율도 20%에 불과해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남은경 도시개혁센터 팀장은 "공시지가를 현실화하고 환수율도 50% 정도 수준으로 올려야 개발이익을 제대로 환수할 수 있다"며 "개발로 얻는 불로소득을 제대로 나눠야 무분별한 재개발 사업도 줄고 세입자 지원도 늘릴 수 있다"고 했다.

백인길 대진대 도시부동산공학과 교수도 "상가나 주택 재개발에서 기부채납을 통한 공공임대상가나 공공임대주택 물량을 늘려 기존 세입자들이 다시 돌아와 영업도 하고 거주도 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