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미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 주장…"화가는 알 수 없어"
"경포대도와 함께 8폭 병풍 중 두 점"
"조선 중기 총석정도 발문 작자는 16세기 문인 박충간"
지난해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조선시대 회화 '총석정도'(叢石亭圖) 발문을 쓴 사람은 16세기 문신 박충간(?∼1601)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수미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은 작년 7월 '경포대도'(鏡浦臺圖)와 함께 기증받아 '실경산수화' 특별전에서 공개한 '총석정도'를 분석해 "박충간으로 짐작되는 '상산일로'(商山逸老)라는 인물이 1557년 봄에 홍연과 함께 금강산과 관동 지역을 유람하고 병풍 그림을 만든 것"이라고 13일 주장했다.

이 부장은 중앙박물관이 펴내는 학술지 '미술자료'에 게재한 논문에서 '총석정도'에 있는 발문을 통해 작자를 추정했다.

병풍 마지막 폭이었을 '총석정도' 발문 첫 문장에 등장하는 사람은 '홍군덕원'(洪君德遠). 이 부장은 그가 '덕원'이라는 자를 사용한 홍연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홍연은 1546년 사마시에 합격했고, 1551년 별시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예문관 검열, 사헌부 지평, 평양서윤, 안주목사, 함경도대도호부사, 이조참판을 지냈다.

"조선 중기 총석정도 발문 작자는 16세기 문인 박충간"
이 부장은 총석정도 발문에 있는 인장 중 '상산개부'(商山開府), '남애처사'(南崖處士) 글자에 주목했다.

그는 "홍연과 동시대를 산 16세기 인물 중에 '남애'(南崖)라는 호를 쓰는 사람으로 박충간이 있다"며 "박충간의 본관이 상주이고, 상주의 옛 지명이 상산"이라고 강조했다.

박충간은 1584년 호조정랑에 올랐고, 1589년 정여립 역모를 고발해 형조참판으로 승진하면서 평난공신 1등에 책록된 뒤 상산군에 봉해졌다.

이 부장은 "박충간은 홍연과 관동 지방을 유람하고 유산록(遊山錄)을 쓴 뒤 8폭 병풍을 만든 것 같다"며 "그림은 박충간이 50세를 넘은 1571년 이후에 제작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이어 '남애처사'라는 도장에서 '처사'는 벼슬을 하지 않는 선비를 의미하므로, 평난공신이 된 1590년 이전에 날인했을 확률이 높다고 덧붙였다.

박충간으로 추정되는 상산일로는 "옛사람들이 산수 속에 구름처럼 누워서 세상일에 간여하지 않았던 것을 볼 적마다 그 고매하고 탁월함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경지였다"며 "내 다시는 갈 수 없기에 마음에서 풀리지 않는 그리움을 위로할 따름"이라고 적었다.

다만 이 부장은 그림을 그린 인물에 대해서는 "회화 수준으로 보아 문인 관료인 박충간이 직접 그렸다고 하기는 어렵다"며 "화가는 박충간이 작성한 유산록과 그가 유람한 내용을 듣고 이해한 간접경험에 바탕을 둬 작품을 제작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화가는 안견파 화풍의 전통적 구도와 화법에서 출발했지만, 실제 경관의 특성을 담으려고 새로운 배치와 시점, 표현법을 시도했다"며 과감한 구도와 대담한 농담 대조, 부벽준(도끼로 찍은 듯한 자국으로 입체감과 질감을 살리는 기법) 초기적 양상이 회화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이 부장은 "관동 지역 명승도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초기에 여러 화가가 병풍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문헌으로 확인되지만, 이를 증명할 작품은 없었다"며 "경포대도와 총석정도는 현존하는 관동도 중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예로, 관동도 병풍의 제작 양상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회화사적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