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탁 서울대 AI연구원장은 지난 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AI 시대 정부의 역할은 기술을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피해가 우려되는 부문의 사회안전망을 확실히 갖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장병탁 서울대 AI연구원장은 지난 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AI 시대 정부의 역할은 기술을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피해가 우려되는 부문의 사회안전망을 확실히 갖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인공지능(AI) 패권을 두고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저마다 AI 기술과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로드맵을 내놓고 AI 주도권 경쟁에 나서고 있다. 지난 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막을 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에서도 최대 화두는 단연 AI였다.

한국은 글로벌 AI 경쟁에 잘 대비하고 있을까. 장병탁 서울대 AI연구원장(컴퓨터공학부 교수)은 다소 회의적이었다. 장 원장은 “우리 사회가 100% 완성도를 지향하는 제조업 기반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AI 사회에 진입조차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완성도보다 속도를 앞세운 중국을 ‘가장 무서운 나라’로 꼽았다. 그는 또 타다 서비스를 금지한 정치권의 결정을 두고선 “모든 부작용을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는 제조업 기반 사고가 미래 기술 사회로 가는 길을 막은 대표적 사례”라고 꼬집었다.

서울대는 지난해 11월 8일 대학 본부 산하에 AI연구원을 설립했다. AI연구원의 초대 원장으로 부임한 장 원장은 서울대 내부에서 파편적으로 이뤄지던 AI 관련 연구를 총괄 관리하고, 여러 연구진 사이의 협력을 이끌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글로벌 AI 경쟁 속에서 우리 사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정부와 대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지난 3일 답을 찾기 위해 서울대 제2신공학관에 있는 장 원장 연구실을 찾았다.

▶전 세계가 AI 패권 경쟁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공학 기술부터 의료, 법률 등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핵심 미래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AI 분야는 뭐든 일단 먼저 해보는 사람이 임자예요.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은 분야에 빨리 뛰어들고, 실험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자가 모든 것을 가져갑니다.”

▶가장 앞서나가는 나라는 어디입니까.

“중국이 가장 무섭습니다. 중국은 수학을 잘하는 인재가 AI 분야로 대거 몰리고 있습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중국의 AI 인력은 한국에 비해 월등하죠. 게다가 중국은 규제가 느슨하고 중앙정부가 전폭적으로 AI산업을 밀어주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인 안면인식 기술을 보세요. 인구가 많아서 데이터까지 풍부합니다. 중국 특유의 사업가 기질까지 더해 실험에서 사업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갖춰 가장 무서운 나라입니다.”

▶일본은 어떤가요.

“일본은 제조업 문화가 강하다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합니다. 일본은 천천히 모든 것을 검토해 완벽에 완벽을 기하는 문화가 뿌리 깊게 남아 있습니다. 사고 예방이 중요한 제조업에선 이게 맞죠. 그런데 AI의 생명은 스피드입니다.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우선은 실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본처럼 100% 완성도에 집착해서는 속도 경쟁에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은 지금까지의 장점이 발목을 잡을 겁니다.”

▶한국도 전통적으로 제조업이 강한데요.

“그래서 항상 일본과 중국을 비교하면서 배워야 합니다. 한국은 일본보다는 역동적이지만 소프트웨어나 지식산업에 대한 가치를 잘 인정해주지 않는 문화가 있습니다. 한국의 발전에 가장 큰 제약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제조업처럼 시각적인 결과물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비시각적인 데이터 등을 가치로 만들어낸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제조업 패러다임으로 AI 경쟁에 뒤처진 사례가 있나요.

“정부와 국회가 타다 서비스를 금지한 게 대표적입니다. 정치적 관점이나 단기적 공정성 차원에서만 보면 금지하는 게 맞겠죠. 택시 기사들이 당장 피해를 보니까요. 그런데 AI 기술인 입장에서 보면 타다 금지는 미래 기술로 가는 시대에 역행하는 조치입니다. 택시 기사 실직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다는 이유로 실험 자체를 막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럼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술개발의 틀은 열어주면서 사회안전망을 확실히 구축하는 것이 AI 시대 정부의 역할입니다. 타다로 치면 택시 기사가 생계에 피해를 보지 않고 재취업할 수 있도록 재교육을 확실히 해야 했습니다. 일부 생계가 어려워진 기사가 있다면 또 다른 복지정책으로 이들을 도와야 했죠. 혁신과 복지를 함께 고려해야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대안이 나올 수 있습니다.”

▶실험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중요하군요.

“AI 기반 경제, AI 기반 사회로 진입하기 위해선 초기 실험이 가능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세대의 선진국이 될 수 있어요. 정부는 이걸 계속 미루고 있습니다. AI 기술은 단순히 그 기술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AI가 일자리를 모두 대체할 것이라는 불안감도 큰 것 같습니다.

“서서히 대체되긴 할 겁니다. 그러나 대체되는 만큼 새로운 일자리도 분명히 생깁니다. AI 활용법을 가르치거나 AI 툴을 만들기 위한 기술인 등의 직업이 무수하게 생겨나겠죠. 그런 차원에서 정부가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은 시대 변화에 맞는 재교육입니다. 재교육도 당장 닥쳐서 준비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사회의 변화 양상과 경향을 읽고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글로벌 경쟁 속에서 서울대가 AI연구원을 신설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AI 연구의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임계점)’를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크리티컬 매스는 서로 다른 AI 연구의 융합과 시너지를 유도하기 위한 최소한의 집약체를 말합니다. 서울대엔 AI를 연구하는 교수가 이미 150여 명이나 있지만 파편화돼 있어 서로 무엇을 연구하는지 몰랐습니다. 융합이 핵심인 AI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진이 한곳에 모여 활발하게 협력할 수 있어야 합니다. AI연구원이 그런 역할을 할 것입니다.”

▶AI연구원은 서울대 구성원만을 위한 기구인가요.

“결코 아닙니다. 크리티컬 매스를 키우기 위해 다른 대학이나 정부출연연구기관과도 적극 협력할 계획입니다. AI가 융합할 수 있는 분야가 워낙 광범위한 데다 한국은 AI 인력이 경쟁국에 비해 너무 부족해 여러 기관과의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AI연구원은 국가 발전의 궁극적 미션으로 떠오른 AI 개발을 위해 사명감을 갖고 AI 협력의 허브 역할을 할 것입니다.”

▶국내 AI 전문인력이 얼마나 부족한 상황입니까.

“그 어떤 산업 분야에도 AI 인력이 충분한 곳이 없습니다. 기업들이 인력을 더 키워달라고 아우성이지만 학과 정원도 고정돼 있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정부가 최근 대학의 결손인원을 활용한 정원 조정은 허용해주겠다고 했는데요.

“대학의 요구가 일부 받아들여진 셈이지만 결코 충분하지 않습니다. 수도권 정원 규제를 AI 관련 전공에 한해서 풀어주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수도권 정원 규제를 풀면 지방대에 갈 학생이 줄어듭니다. 현실적으로 정부가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을까요.

“전국적으로 AI 관련 학과의 정원을 동시에 늘려주면 됩니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AI 연구에 나서고 AI 인력이 배출돼야 균형 있는 산업 발전이 가능합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AI 발전이라는 대의적 차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대학에서 AI를 가르칠 교수도 부족하다고 들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하나는 글로벌 기업과 대학의 임금 차이가 너무 큽니다. AI를 연구하면 박사 학위를 받은 1년 차 연구원도 연봉 3억원씩 받으면서 미국 실리콘밸리로 스카우트됩니다. 서울대에서 평생 연구해도 그 월급 못 받죠. 연구력이 좋으면 더 천정부지로 치솟습니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부가 그동안 기초학문에 대한 투자를 너무 안 했습니다. 수학이 대표적입니다. 머신러닝이란 게 결국 수학을 응용한 기술이에요. 정부는 기초학문이 곧장 산업으로 연결될 줄 몰랐겠죠. 4차 산업혁명은 그런 시대입니다. 이제라도 기초학문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가 필요합니다.”

"AI는 먼저 달려드는 기업이 선점…'속도' 앞세운 中 가장 무서워"
■ 장병탁 서울대 AI연구원장은…

장병탁 서울대 인공지능(AI)연구원장은 뇌과학·인지과학 전문가다. 사람이 바둑돌을 대신 놔줘야 하는 알파고를 넘어 사람처럼 직접 행동하면서 생각하는 AI를 개발하기 위해선 머신러닝 연구가 핵심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1997년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로 부임한 이후 머신러닝 연구에 힘을 쏟았다. 머신러닝과 딥러닝 분야의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2017년 정부로부터 정보통신부문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지난해 11월엔 서울대가 신설한 AI연구원의 초대 원장에 올라 서울대에서 진행하는 AI 연구를 총괄하는 중책을 맡았다.

■ 약력

△1963년 경북 문경 출생
△1986년 서울대 전자계산기공학과 졸업
△1988년 서울대 컴퓨터공학 석사
△1992년 독일 본(Bonn)대 컴퓨터과학 박사
△1992~1995년 독일국립정보기술연구소(GMD) 선임연구원
△1997년~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2003~2004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초빙교수
△2010~2013년 한국정보과학회 인공지능소사이어티 회장
△2014~2018년 한국인지과학산업협회 회장
△2019년~ 서울대 AI연구원 원장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