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만찬] "천체과학자가 꿈이었는데 공부나 하라는 꾸중에 꿈 접어"
장제국 동서대 총장은 기존 교육과 다른 교육을 표방하며 교육 철학인 ‘낙오자 없는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학생 개개인의 역량과 창의성에 집중해 고유의 재능인 ‘달란트(talent)’를 찾아주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그는 소통하는 총장으로도 유명하다. 페이스북을 통해 학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은 물론 멘토 역할을 자처한다. 그의 페이스북 친구 5000여명 중 대부분은 학생들이다. 학생들이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면담을 요청하면 언제든 응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낙오자 없는 교육은 어떤 의미인가.
“어린 시절 천체과학자가 꿈이었다. 중학교 때 밤새 별 사진을 찍어 물상 선생님에게 보여드렸는데, 기대했던 칭찬이 아니라 ‘공부나 하라’는 말을 듣고 천체과학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었다. 교육자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때까지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받는다. 예를 들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철로를 만들어 놓고 그 길만 따라가게 한다. 그 길을 벗어나면 낙오자가 된다. 점점 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일당백을 하는 인재가 필요하다. 정해진 철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없는 길도 만들어서 가는 인재가 필요한 시대다. 한사람이라도 낙오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중학교 때 꿈이 꺾인 경험이 교육철학이 됐다.”

▶이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나.
“우리 대학에는 ‘달란트개발실’이 있다. 학생 개개인의 숨겨진 재능과 끼를 발굴하고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통해 취업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공부는 잘하지만 진로를 정하지 못해 방황하는 학생들이 많다. 한번은 경영학과 학생들을 데리고 경주로 1박2일 여행을 떠났다. 학생들에게 불국사 여행 가이드라 생각하고 공부를 해오라는 미션을 줬는데, 너무 잘하더라.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가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거라 믿는다.”

▶학창시절은 어땠나.
“기자가 되고 싶었다. 1980년대에는 언론의 자유가 없었다. 부산에는 일본 방송이 나왔는데, 데모하는 모습, 광주 민주화운동 모습을 일본 프로그램을 통해서 처음 접했다. 국제전문 기자가 되고 싶어서 워싱턴DC에 있는 대학에 갔다. 워싱턴DC는 국제교류로 유명한 곳이다. 적극적인 마인드만 있으면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고 열린 공간도 많다. 대학교 2학년 때 청문회를 방청하고 발언도 해봤다. 미국 국무성 차관보를 지냈던 교수님께 수업을 받으면서 영향도 많이 받았다. 공부하면 할수록 이 분야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고, 석사를 밟으면서 학문의 길을 가게 됐다.”

▶힘든 점은 없었나.
“초반에는 영어가 안 돼서 힘들었다. 미국인 교수 입장에서 보면 외국인들이 영어를 잘 못하니까 수업시간에 안 시킨다. 지적당하는 것도 싫지만 자꾸 열외 시키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부끄러움도 넘어서니 괜찮은 경지가 오더라.”

▶첫 취업은 일본 기업이었다.
“일본인 대학 친구가 있어서 일본어를 공부하다 보니 일본 취업의 기회가 열렸다. 1994년에 일본 이토추상사 동경본사 정치경제연구소 특별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당시 제1차 북핵문제가 터졌다.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하는 일을 했는데, 그때 자주 등장한 인물이 한반도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일본 게이오대의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였다. 그분을 직접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에 찾아가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다. 거기서 기자의 꿈을 펼친 것 같다.(웃음)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그분이 박사 과정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생각이 없다고 거절했는데, 시험이나 한번 보고 합격하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덜컥 합격을 했다. 당시 회사에 일이 많았던 터라 풀타임으로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5년간 주말도 없이 살았다.”

▶박사 과정을 마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다.
“일과 병행하려니 힘들었다. 막상 박사 과정을 마치고 나서는 정말 좋은 기회였단 걸 알게 됐다. 나는 대학과 대학원을 외국에서 나왔기 때문에 한국에는 인맥이 없었다. 반면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는 한국에 인맥이 엄청난 분이었다. 그분을 통해 일거에 훌륭한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됐고, 학회에 데뷔하는데도 도움을 받았다. 어떤 분야든 성실히 임하면 자연히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는 걸 새삼 느꼈다. 물론 특출 난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실력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을 하든 중요한 것은 성실함이다. 작은 회사라도 성실하게 일하면 반드시 눈에 띄게 되어 있고, 반드시 기회가 찾아온다.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도 첫 만남 당시 내가 열심히 질문하는 모습을 보고 문하생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로스쿨 재학 당시 일화를 소개한다면.
“1990년부터 미국 뉴욕에 있는 시러큐스대학 로스쿨에 다녔다. 중국과 국교정상화도 안됐을 때다. 옆 자리에 중국인 친구가 있었는데, 어쩐지 마음에 걸려 잘해줬다. 밥도 사주고 필기한 것도 보여주면서 친하게 지냈다. 한국에 와서 동서대 부총장을 할 때였다. 서울에 있는 중국대사관에서 박람회를 한다고 연락이 왔다. 중국 우한(무한)에 있는 대학에서 자매결연을 맺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총장을 만나러 중국에 갔는데, 총장이 나를 알아보더라. 로스쿨 다닐 때 옆 자리에 앉던 친구였다. 20년 만에 만난 친구와 인연이 돼 중국에 한중합작대학을 설립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옆에 있는 친구가 앞으로 뭐가 될지 모른다고 항상 얘기한다. 특강에 참석할 때도 강연자에게 꼭 명함을 받으라고 한다. 그게 인연이 돼 멘토가 될 수도 있고 취업을 할 때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미국, 중국, 일본에 국제화 캠퍼스를 두고 있다. 학생들을 선발하는 평가기준에 인생리셋전형이 있는데 무엇인가.
“글로벌 캠퍼스를 통해 연간 250명의 학생들이 해외 경험을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호프국제대학 내에 동서대 미주캠퍼스에서 매년 100명의 학생들이 미국 문화를 체험하고 영어공부를 한다. 수업료와 기숙사비, 항공료를 전액 지원하고 있어 가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많다. 70%는 성적순, 나머지 30%는 인생리셋전형으로 에세이에 드러난 가능성을 보고 선발한다. 학점이 0.08점이지만 최종 선발돼 미국에서 패션 디자이너 공부를 계속한 학생도 있었다. 그런 친구들이 달란트를 찾고, 훨씬 더 성장해서 돌아온다.”

▶일본과의 교류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부산-후쿠오카 대학 간 컨소시엄에도 참여하고 있다. 부산의 우수한 인재들이 서울로 빠져나가다 보니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지 않는다. 부산과 후쿠오카는 220㎞ 거리로 서울보다 가깝다. 비행기로는 50분이 걸린다. 인구 350만의 부산과 150만의 후쿠오카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엮으면 국경을 초월한 규모의 경제를 일으킬 수 있다. 센텀에 부산-후쿠오카밸리를 만들어 아시아에 유능한 IT 기술자들을 모으면 굉장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부산에 12개 종합대학이 있는데 콘텐츠, 디자인은 다 하고 있다. 또 부산에 있는 모든 대학에 영화과가 있는데 취업할 곳이 충무로 밖에 없어 안타깝다. 요즘은 영화에 CG 작업을 많이 하는데, 부산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부산-후쿠오카를 광역 경제권으로 엮고 동북아시아 벤처를 만들면 청년실업 문제 해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요즘 일본 취업의 인기가 많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산업을 일으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럽에는 국경을 초월한 도시간의 연결이 많다. 동북아시아에서 할 수 있는 곳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부산-후쿠오카가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대학생들이 취업 때문에 힘들어 한다.
“기성세대가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하는데 무책임한 말이다.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걸 맞는 일자리가 필요하다. 기성세대는 좋은 시절을 다 누리고 아이들한테는 눈높이를 낮춰서 2만불, 1만불 시대에 맞는 직업군에서 일하라고 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우리나라에 소위 혁신기업으로 불리는 기업들을 들여다보면 혁신이 빠져 있다. 구글은 인공지능(AI)을 개발해 이세돌과 바둑을 둘 경지에 이르렀고, 우주개발도 하고 있다. 중국 항저우의 알리바바에서도 천지개벽이 일어나고 있다. 다양한 국적의 IT 기술자, 디자이너, AI 개발자로 북적이고, 얼굴인식 결제시스템(스마일투페이)를 만들었다. 이런 게 혁신이다. 기성세대가 학생들에게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계속 붐을 일으켜야 한다.”

잡앤조이=이진이 기자 ziny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