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3일 서울 성북구 한 다세대 주택에서 70대 노모와 40대 딸 3명 등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거액의 빚에 시달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3일 서울 성북구 한 다세대 주택에서 70대 노모와 40대 딸 3명 등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거액의 빚에 시달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새해를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대전에서는 30대 남성이 생활고를 비관해 4살 아들을 목 졸라 숨지게 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조사 결과 해당 남성은 뚜렷한 직업 없이 혼자 두 명의 자녀를 키워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는 자녀들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한다는 메모도 발견됐다.

최근 생활고를 비관한 가족 동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3일 충남 천안시에선 40대 일란성 쌍둥이가,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에는 대구에서 일가족 네 명이 함께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취업난과 불황이 지속되면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가족 동반자살 한 달에 두 번 꼴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한해 언론에 보도된 가족 동반 자살사건은 25건이다. 해를 넘겨 보도된 대전 일가족 자살사건 등을 합치면 27건으로 두 달에 한 번 꼴로 가족 동반자살이 벌어진 셈이다.

동반자살의 다수는 생활고 비관 때문이었다.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받더라도 금액이 적어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사례들이 있었다. 작년 1월 3일 발생했던 서울 중랑구 모녀 동반자살의 경우 80대 노모가 받는 노인기초연금 25만원 외엔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인천 계양구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일가족들도 정부의 지원을 받았지만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였던 A씨는 실직 후 긴급복지지원금 95만원을 3개월 동안 받았지만 직업을 구하지 못하자 지원 대상에서 탈락된 것으로 전해졌다.
자료 : 경찰통계연보

자료 : 경찰통계연보

생활고를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경제·생활문제로 자살한 사람은 △2014년 2889명 △2015년 3089명 △2016년 3043명 △2017년 3111명 △2018년 3390명으로 집계됐다. 반면 같은 기간 전체 자살자 수는 2014년 1만3658명에서 2018년 1만3216명으로 소폭 줄어 생활고 관련 자살자 비중이 2018년 기준으로 전체 25.6%를 차지할 정도다.

지지부진한 ‘복지 사각지대' 제도 개선

전문가들은 2014년 발생한 ‘송파구 세 모녀’ 사건처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정부 역시 복지예산을 늘리고 있지만, 정작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제도 개선이 ‘중복성 현금복지’에 묻히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부양의무자 제도를 임기 내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 자격이 되더라도 일정 소득 이상의 자식·부모 등(부양의무자)이 있으면 지원하지 않는 제도 때문에 광범위한 ‘복지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어서다. 부양의무자 제도로 생계급여를 못 받는 비수급 빈곤층은 63만 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2018년 부양의무자 기준을 일부 완화해 추가로 4만 여 가구를 지원했다. 올해부터는 부양대상자가 중증장애인일 경우 부양의무자 제도를 적용받지 않는다. 그러나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당초 계획과 달리 ‘예산문제’를 이유로 제도개선을 늦추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출처=한경DB

출처=한경DB

반면 중복 복지사업으로 새는 돈은 수십조 원에 이른다는 지적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현금지원 예산사업 중 중복사업으로 분류된 규모는 2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가가 지급하는 노인 기초연금과 지자체별로 지급하는 ‘어르신 공로수당’ ‘품위유지수당’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소기업에 재직하는 청년의 자산 형성을 돕기 위한 고용노동부의 내일채움공제 사업도 중소벤처기업부의 ‘청년재직자 내일채움공제’와 사실상 같은 사업으로 꼽힌다.

참여연대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마땅한 시대적 변화”라며 “정부는 관련 예산을 확보하고 국회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법안을 발의해야 한다”고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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