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불참한 경사노위는 '식물기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조합원 수에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을 제쳤다. 이로써 한국노총은 사실상 대표노조의 자리를 내놨다. 제1 노총이 된다고 해서 법률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하지만 정부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정부는 그간 한국노총을 대표노조로 인정해 왔다. 한국노총은 노동위원회, 최저임금위원회 등 정부위원회에서 민주노총보다 더 많은 위원을 두고 주도권을 행사해 왔다.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대표적이다. 민주노총이 내부 계파 간 갈등으로 경사노위에 불참하고 있지만 정부는 한국노총만 참여한 가운데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제1 노총이 민주노총으로 바뀐 마당이니 지금처럼 경사노위를 운영하는 데는 대표성 논란이 예상된다.

민주노총이 현재 참여하는 위원회는 50여 개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관련 위원회를 포함해 노동계가 참여하는 70여 개 정부위원회나 공공기관 이사회는 이제 민주노총의 더 커진 입김을 마주하게 됐다. 위원·임원 등 인사 추천을 거부하기 힘들어질 뿐만 아니라 논의 안건별로 민주노총 요구를 우선 고려해야 할 형편이다. 공모를 거쳐 예산을 지원하는 노동단체 지원 사업 등 각종 예산사업에서도 민주노총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노정 관계 전반에서 변화가 불가피하다. 게다가 2년 연속 고율 인상을 기록했던 최저임금도 올해 2.9%로 속도조절했지만 당장 내년 봄이면 조직 확대를 등에 업은 노동계 목소리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크다.

국회 사정도 만만치 않다. 제1 노총으로 부상한 민주노총이 반대하는 탄력적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도 입법 논의가 이뤄지기 어려운 처지다. 탄력근로제는 지난 10월 경사노위에서 의결됐지만 민주노총은 빠져 있었던 데다 장외에서 계속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업자 노조 가입 허용 등을 담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관련 노동법 개정안은 사용자 단체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지만 민주노총이 조직적 과제로 밀어붙이고 있다. 총선을 앞둔 국회로서는 가볍게 여기기 어렵다.

사용자 단체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사용자 단체는 그간 한국노총과 중앙단위 노사관계를 형성해 왔지만 민주노총이 제1 노총으로 부상한 마당에 관계 설정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개별 사업장 노사 관계에도 불안 요인이 더 많아졌다. 민주노총이 공공정책 등을 내세워 정치투쟁을 전개할 경우 개별 사업장도 파업 투쟁 대열에 동원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에 비해 민주노총이 우위를 점하는 대기업, 공공부문 사업장과 최근에 노조를 조직화한 정보기술(IT)업계 대기업의 노사 협상 과정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