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번 상황에서 화재나 구조 현장 목격하면 곧바로 온몸 던져
소방관 영웅들 "개인의 안위보다 국민의 안전이 우선입니다"
[2019 의인열전] 양복 입고, 패딩 입고 불 끈다…소방관 영웅들
슈퍼맨·배트맨·스파이더맨 같은 초인적 영웅들도 대한민국 소방관에게 못 당하는 게 하나 있다.

선량한 시민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순간,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초인적 영웅들은 능력치를 발휘하게 만드는 의상부터 우선 챙겨 입어야 한다.

슈퍼맨은 바지 위에 붉은색 팬티를 입어줘야 제대로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배트맨은 근육질 몸매를 드러내는 전신 의상에 망토까지 장착해야 괴력을 뿜어낸다.

의상을 입지 않은 영웅의 활약은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 소방관은 다르다.

비번인 상황에서 화재 현장을 우연히 목격했을 때 방화복이 없어도 소방대나 구급대가 도착하기 전 현장에 몸부터 던진다.

때로는 양복 차림으로, 때로는 패딩 점퍼 차림으로 소화전 호스를 움켜잡고 화마에 맞선다.



지난 10월 28일 오후 9시께 경남 창원시 굴암터널.
택배 물품을 가득 실은 화물차 밑부분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거센 불길에 매캐한 연기까지 터널을 뒤덮으며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
바로 그때 남성 2명이 어디선가 소화전 호스를 끌어와 불길을 잡기 시작했다.

한 남성은 양복 차림이고 다른 한 명은 와이셔츠 차림이었다.

이들은 바로 부산항만소방서 김준근 소방사, 부산강서소방서 성치훈·조배근 소방교였다.

이들 소방관은 사고로 숨진 동료의 장례식장에 가던 길이었지만 터널에서 화재를 목격하고는 주저하지 않고 차를 세웠다.

이어 터널 옥내 소화전을 찾은 뒤 호스를 20m 정도 끌어다가 불을 끄기 시작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 없이 불길은 잡혔고, 이들 소방관은 부산시장 표창장과 함께 특별승급 포상을 받았다.



지난 9월 8일 부산에서는 도로에서 뒤집어진 차 안에 갇혀 있던 32살 엄마와 6살 아들이 이곳을 지나던 소방관의 도움 덕분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제13호 태풍 링링 영향으로 강풍이 매섭게 몰아치던 날, 부산 기장군 두명터널 인근에서 흰색 승용차 1대가 완전히 뒤집힌 채 전복됐다.

비에 젖은 도로 1차로에 뒤집어진 승용차 때문에 2차 사고까지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그냥 지나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 이들이 있었다.

바로 부부 소방관인 부산 북부소방서 김용 소방사와 양산 중앙119안전센터 이단비 소방사, 그리고 서울 노원구조대 조현민 소방교다.

이들은 휴무를 맞아 지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차를 몰던 중이었다.

이들 소방관은 사고 현장에 차를 세운 뒤 엄마와 어린이가 차 안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먼저 119에 신고한 뒤 구조에 나섰다.

구조대 소속인 조 소방교가 우선 차 안에 있던 모자를 침착하게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줬다.

구급대원인 김용·이단비 소방사는 평소 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던 구급 키트를 활용해 응급처치에 나섰다.

구조활동을 마치고 보니 옷까지 비에 홀딱 젖어버려 결혼식장에서는 예식 후 함께 사진을 찍기도 민망했지만, 소방관들은 엄마와 아이를 무사히 구조한 것에 만족했다.



지난 1월 8일 인천에서는 퇴근 후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소방관들이 인근 상가에서 불이 나자 사복을 입은 채 불길을 잡고 손님들을 대피 시켜 화제가 됐다.

당시 인천 중부소방서 송현안전센터 정기영 소방위는 오후 8시께 귀가 중 동구 송현동 열쇠 제작 점포에서 발생한 화재를 목격했다.

불은 바로 옆 8층 상가건물로 번질 기세였다.

건물에는 PC방·노래방·당구장·독서실 등에 100여명이 있어 불이 건물로 옮겨붙을 경우 대형 인명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정 소방위는 곧바로 건물 1층 소화전을 찾아 소방호스를 꺼내고 진화작업을 벌였다.

행인들에게는 119에 신고해달라고 부탁하고, 송현안전센터 동료에게도 전화해 지원을 요청했다.

마침 화재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함께 식사하고 있던 동료 6∼7명이 밥을 먹다 말고 한달음에 달려와 진화작업에 동참했다.

일부는 패딩점퍼 사복을 입은 채 불길 바로 앞에서 방수 호스를 손에 쥐고 불길을 잡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은 옆 건물 3∼4층으로 올라가 유리창을 깨고 그 층의 소화전 방수 호스로 열쇠 점포를 향해 물을 뿌리며 결국 화재 확산을 막았다.

정 소방위는 "불이 난 점포 옆 건물의 규모를 보니 소화전을 갖추고 있을 것으로 생각돼 소화전부터 찾아 진화작업을 시작했다"며 "자칫 큰불로 번질 수 있었는데 별다른 인명피해 없이 진화돼 천만다행"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2019 의인열전] 양복 입고, 패딩 입고 불 끈다…소방관 영웅들
위험천만한 순간에도 자신의 안위보다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몸을 던지는 소방관들의 헌신에 많은 이들은 갈채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소방관의 안전 또한 중요하다"고 걱정하기 마련이다.

앞서 거론된 사건을 통해 화제가 됐던 소방관들은 그런 우려에도 언론 인터뷰에서 한결같이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다른 소방관도 그런 상황 앞에 있었다면 저처럼 행동했을 거예요.

"
영웅을 찾기 어려운 시대라고 하지만, 영화 속 슈퍼 히어로보다 더 영웅 같은 소방관들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