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정호성에게 보내면 대통령에도 보낸 것으로 인식"
변호인, 박근혜 '구명조끼 발언' 옹호하기도…"구조 빨리하라는 질책이었다"
검찰 "정호성에 보냈다는 내용의 초안, 김기춘이 '대통령'으로 수정시켜"
김기춘 "세월호 상황, 朴에 보고" 주장…檢 "조작한 것"
불구속 상태로 '세월호 보고 조작 의혹' 사건 항소심에 출석한 김기춘(80)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참사 당시 상황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충분히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실장은 16일 서울고법 형사13부(구회근 강문경 이준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세월호 보고조작 사건 항소심 두 번째 공판기일에 나와 직접 이렇게 주장했다.

그간 구속 상태에서 환자복 차림으로 법정에 나와 재판을 받던 김 전 실장은 이날은 불구속 피고인 신분으로 출석했다.

보수단체 불법 지원 사건(이른바 '화이트리스트')을 심리하는 대법원이 구속 기간 만료를 이유로 이달 4일 김 전 실장을 석방했기 때문이다.

파란색 넥타이를 맨 양복 차림에 머리카락을 말끔히 다듬고 법정에 나온 김 전 실장은 적극적으로 재판부에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비서실이건 안보실이건 이메일로 하는 대통령 보고 문건은 아랫사람들이 기계적으로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에게 보낸다"라며 "부속비서관실은 대통령 방과도 붙어 있기 때문에, 정호성에게 서류를 보내면 바로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인식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실장은 "저만이 아니라 수석비서관, 비서관들도 '으레 보고됐겠거니' 생각했는데, 이번에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정호성이 바로 보고하지 않았는데 몰랐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어떤 비서관도 정호성에게 서류를 보내고는 '대통령에게 몇 시에 보고됐느냐'고 확인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라며 "저는 (보고가 바로 이뤄지지 않은 것을) 몰랐다"고 말했다.

이는 자신에게 유죄를 선고한 1심의 판단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김 전 실장은 참사 당일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았는지 여부와 첫 유선보고 시각 등을 사실과 다르게 적어 국회에 제출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대통령이 사고 상황을 언제 처음 보고받았고, 적절한 조치를 했는지 등을 충분히 인식했음에도 비난받을 것을 우려해 '대통령이 11차례 보고를 받아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며 상황을 감추려 했다"고 판단했다.

1심은 "정말 대통령이 사고 당일 실시간으로 끊임없이 보고를 받았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는지 의문이 든다"라고도 지적했다.

이런 판단에 따라 1심은 김 전 실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김 전 실장 측 변호인은 이날 변론 과정에서 "1심의 판단은 난폭한 사실 인정"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변호인은 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의 보고를 모두 더하면 실제로 박 전 대통령에게 실시간으로 끊임없는 보고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당시 중대본을 방문한 박 전 대통령이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발견하기가 힘드냐"고 질문한 것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실언이 아니라 구조를 서두르라는 '질책성' 발언이라고 변호인은 주장했다.

변호인은 "객관적 증거를 보면 대통령은 충분히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다"며 "다만 그 표현 방법이 국민에 전달되기에는 소홀했는지 모른다"고 항변했다.

이런 김 전 실장의 주장에 대해 검찰은 "당시 비서실 행정관들은 대통령이 아니라 정호성에게 상황을 보고했다는 내용으로 초안을 작성했다"며 "이것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바꾼 사람이 김기춘"이라고 반박했다.

검찰은 아울러 참사 당일 대통령이 본관과 멀리 떨어진 관저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알던 사람도 김 전 실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관행적으로 정호성에게 한 보고가 대통령 보고와 마찬가지라는 말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관저에 있어도 청와대 경내에서 근무했던 것이라는 논리로 비난을 피하기 위해 문구를 고친 것"이라고 김 전 실장의 주장을 비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