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역사학자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과거 극복' 담지 못해"
'한일관계' 국제심포지엄…"협상·사과에 '진정성'이 가장 중요"
"日 과거사 극복 위해선 '피해자 인권'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선 강제징용 피해자와 일본군 위안부 등의 '인권과 존엄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일본 역사학자의 제언이 나왔다.

오타 오사무(太田修) 도시샤(同志社)대 교수는 1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 발제자로 나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일본의 '과거 극복'(overcoming the past)을 담지 못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심포지엄은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위하여'라는 주제 아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주최, 한국법제연구원·서울대 일본연구소 주관으로 열렸다.

오타 교수는 "한일청구권협정은 일본 정부에 식민 지배나 전쟁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었다"며 "식민지배 하에 이뤄진 전시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과, 배상을 통한 '과거 극복'의 필요성을 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대해 강제징용 피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한 이후 한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대법원 판결이 국가 간 조약으로 국제법과 다름없는 효력을 지닌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위배된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오타 교수의 발언은 일본 사회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자아성찰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과거 극복'을 위한 노력을 할 때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것은 피해자들의 인권과 존엄성"이라며 "일본 정부와 사회는 식민주의자들의 폭력성으로 여겨지는 현행법과 협정들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츠카 에츠로(戶塚悅朗) 류코쿠(龍谷)대 교수는 별도의 발제에서 현재의 한일 갈등과 관련, "현재의 상황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국제법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해석한 것에서 초래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베 총리가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국제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하면서 국가 간 협정으로 피해자들의 인권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양국이 위안부 문제에 합의한 것과 관련해서도 "아베 총리와 일본 외교관들은 피해자들과 직접 만나 사과한 적이 없다"며 "위안부 문제를 타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양국 협상 과정과 그에 따른 사과에서의 진정성"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로렌 리차슨 호주국립대 로위연구소 교수는 "1965년 체제는 해체되고 있다"며 "한국과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외교적 갈등의 악순환을 깨고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선 양국 관계의 근본적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1965년 체제란 한일기본조약과 한일청구권협정을 맺어 국교를 정상화했지만, 양국 간 해석 차이로 불안정하게 전개돼 온 한일관계를 일컫는 말이다.

리차슨 교수는 "한국의 외교 정책이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에 의한, '바텀 업'(bottom-up) 방식으로 형성되고 있다"며 "피해자들이 외교적 해결에 동의하거나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면 해결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과거사 문제 관련 양국 최종 합의 시 피해자들의 의견을 포괄적으로 구하기, 일본과 협상할 때 단순한 법적 구속력보다는 인권 등 민주적 원칙을 바탕으로 접근하기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외교부 소속 국제법 전문가로 주코트디부아르대사를 지낸 이용일 세종시 국제관계대사는 토론자로 나서 한일 갈등의 해결 방향에 대해 "반인도적 사안의 국제적 성격 등을 고려해 현재의 '일본 민간기업 대 국내 피해자' 구도를 '한일 양국 정부 간 사안'으로 전환하고 유엔 등 국제사회와 공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대사는 강제동원 피해 구제 문제와 관련해 "일본이 비협조적일 경우 유엔 인권위원회·이사회를 통해 국제사회 차원의 아젠다화를 추진해 국제사회의 조사 및 해결방안 권고를 기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