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조사도 제대로 안 이뤄진 상태…진전 없으면 계속 촉구"
특조위, 가습기살균제 원인 규명 위해 英 RB 본사 방문조사
특조위 "옥시 본사 CEO에 책임규명·피해자 보상확대 요구 전달"
"옥시(옥시레킷벤키저)의 모기업인 레킷벤키저(RB)의 최고경영자(CEO)에게 내년 8월 31일까지 책임 규명, 피해자 보상 확대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다국적기업 현지조사단은 지난달 28∼29일(현지시간) 런던 인근 슬라우시에 위치한 다국적기업 레킷벤키저(RB)를 찾았다.

RB는 한국에서 대규모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일으킨 옥시싹싹 등을 제조한 옥시RB의 모기업이다.

최예용 특조위 부위원장 등으로 구성된 조사단 5명은 지난 9월 새로 RB 그룹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한 락스만 나라시만을 만나는 한편, 한국에서 근무했던 외국인 임직원 2명을 조사했다.

조사단은 나라시만 CEO로부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 사죄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1일 런던 시내에서 연합뉴스 특파원과 만난 최 부위원장은 그러나 나라시만 CEO가 약속을 제대로 이행할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 RB 본사 차원에서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대한 내부 조사 자체가 이뤄져 있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왜 이같은 일이 벌어졌는지 회사 내부적으로 원인을 규명해야만 재발 방지는 물론 피해자 보상이 가능한데, 이에 대한 나라시만 CEO나 RB 본사의 설명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것이다.

특조위는 일단 RB 본사의 향후 대응을 지켜본 뒤 만족스러운 재발 방지 및 피해보상 대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추가 조사 등을 통해 최대한 압박한다는 계획이다.

다음은 이번 조사를 이끈 최예용 특조위 부위원장과 일문일답.

-- 이번 다국적기업 현지조사 배경은.
▲ 사회적참사 특조위 구성 후 첫 다국적기업 해외 현지조사다.

2016년 가습기살균제 이슈와 관련해 국내에서 1차 형사처벌이 있었다.

RB가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기업임에도 한국인 직원만 일부 처벌을 받았다.

당시 옥시RB의 외국인 사장 등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나 처벌이 되지 않았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안 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이번 피해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거라브 제인 옥시RB 당시 대표가 2013년 해외로 발령나면서 한국을 떠났다.

2016년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내렸지만 그는 국회 청문회, 특조위 청문회 등에도 안 나왔다.

그래서 해외 직접 조사를 나서게 됐다.

-- 제인 전 대표 조사가 불발됐는데.
▲ 옥시RB를 통해서 제인 전 대표, RB 본사 직원 2명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나라시만 RB 그룹 CEO에 대한 만남도 요청했다.

처음에는 모두 가능하다고 했는데 인도에 있는 제인 전 대표가 갑자기 인도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만남을 거부했다.

지난달 25∼26일 RB인도 본사를 두 차례 찾아갔는데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개인 변호사를 통해 정부 허가가 필요하다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 영국 RB 본사 조사는 어떻게 진행됐나.

▲ 인도에 이어 영국으로 건너와 지난달 28∼29일 런던 인근 슬라우시에 있는 RB 본사를 방문했다.

이곳에서 RB 임직원 2명을 조사했다.

둘 모두 한국에서 근무했다.

한 명은 제인 전 대표 밑에서 옥시RB의 마케팅 매니저로 근무했다.

다른 한 명은 가습기살균제 이슈 발생 이후 법적 대응 업무를 담당했다.

새로운 증언을 기대했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다만 한국에서 가습기살균제 이슈로 처벌받은 한국인 직원의 법정 진술과 다른 부분이 있었다.

한국 직원의 주장과 달리 법적 대응을 담당한 직원은 자신이 관련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발뺌했다.
특조위 "옥시 본사 CEO에 책임규명·피해자 보상확대 요구 전달"
-- 나라시만 CEO가 피해자 및 가족에 사과하는 내용의 서한을 내놨는데.
▲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국정조사단이 방문했을 때도 RB에서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가습기살균제 검찰 수사를 통해 한국인 직원들이 유죄를 받은 만큼 그 부분에 대해서만 사과하겠다는 것이다.

-- 이번 조사에서 RB CEO에게 어떤 것을 요구했나.

▲ 가습기살균제 사건 피해신고자가 6천659명, 그중 사망자가 1천461명이다.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중 80% 이상이 옥시RB의 제품을 사용했다.

나라시만 CEO에게 진상 규명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피해자에 대한 보상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라시만 CEO는 가습기살균제 문제에 대해 이해하고 있으며 사과한다고 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회사 차원에서 정확한 원인에 대한 조사가 돼 있지 않았다.

자체 조사 없이는 피해자에 대한 대책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회사 차원에서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구제 및 보상을 위한 전향적인 대책이 제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년 8월 31일은 가습기살균제 피해 추모의 날이다.

특조위 활동은 내년 12월까지다.

나라시만 CEO에게 8월 31일 이전에 한국을 방문해서 사죄하고 문제 해결방안을 제시해달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그는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진심인지는 알 수 없다.

만약 2∼3개월 내에 구체적인 논의나 진전이 없다면 다시 RB에 이를 촉구하겠다.

-- 피해보상과 관련한 요구는 어떤 것이었나.

▲ 옥시RB는 그동안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중 정부로부터 건강피해, 그중에서도 폐손상을 인정받은 사람에게만 보상금을 지불했다.

지금까지 200여명이 보상금을 받았다.

그러나 전체의 80%가 정부의 인정을 못 받아 보상에서 제외됐다.

이들에게도 일정 수준 보상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부의 건강피해 인정 기준이 너무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돼 있다.

국회에 현재 피해구제법 개정안이 여러 개 올라가 있는데, 폐손상 외에 천식이나 폐렴 등 광범위하게 피해를 인정해주는 내용이다.

나라시만 CEO에게도 폐손상 외에 다른 질병 피해자, 정부 인정을 받지 못한 피해자도 광범위하게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피해자보상 규모와 관련해 옥시RB는 2016년 이후 1·2단계 폐손상 피해 판정을 받은 피해자 400여명에게 2천700억원의 배상금을 지불했으며, 특별구제기금에 674억원의 분담금을 냈다고 밝혔다.

)
-- RB 본사가 받아들일 가능성은.
▲ 나라시만 CEO가 검토하겠다고는 했지만 솔직히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이 그룹 CEO로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용을 잘 모르겠다는 얘기를 계속했다.

회사 내부 진상조사도 안 돼 있었다.
특조위 "옥시 본사 CEO에 책임규명·피해자 보상확대 요구 전달"
-- RB 외에 다른 기업에 대한 조사는
▲ 만족스러운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RB에 대한 2차 현지조사를 추진할 것이다.

RB 외에 영국 테스코, 독일 헨켈 등도 가습기살균제 피해 책임이 있다.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을 공급한 덴마크 케톡스라는 회사도 있다.

그들에 대한 조사를 추진할 것이다.

다만 전체 피해에서 RB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만큼 이에 대한 책임 규명이 제일 중요하다.

RB는 최종 소비자 제품을 파는 기업이다.

이 문제를 계속 이슈화하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한다.

-- 특조위 조사의 최종 목표는.
▲ 단순히 피해자들이 얼마를 보상받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RB는 무엇이 잘못됐고, 어떤 절차를 고쳐야 하는지를 규명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그것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