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최은주 신간 '제재 속의 북한경제, 밀어서 잠금해제'
"北, 제재 버틸 내구력 확보…제재지속 시 개방의지 꺾일 수도"
지금 북한은 사상 최강의 국제 제재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위태로운 벼랑 끝에 서 있는 걸까? 놀랍게도 그렇지 않다.

북한은 변화하고 있다.

우리가 색안경을 잠시 내려놓고 북한을 응시하지 않는다면, 변화의 맥박을 놓칠지 모른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과 최은주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28일 출간한 신간 '제재 속의 북한경제, 밀어서 잠금해제'로 북한의 '오늘'을 세밀히 뜯어본다.

저자들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가 3차 전원회의에서 한 발언으로 책을 시작한다.

김 위원장은 기존의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대신해 '사회주의경제건설 총력 집중 노선'을 채택한다.

군사 중심 국가에서 경제건설중심 국가로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그 결과 북한은 최소한 하루 세끼를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내부 발전 동력을 확보했다.

쌀과 옥수수 가격이 비교적 안정적이며, 미국 달러 대비 북한 원화 환율도 2017년 이후 8천원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국방산업은 그동안 북한 경제에서 다른 분야가 넘볼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었지만, 2018년 4월 이후로는 인민경제 발전에 종속되는 현상이 관찰된다.

김 위원장이 지난 8월 양덕군 온천관광지구 건설장 현지지도에서 "스키장에 설치할 수평승강기(에스컬레이터) 제작을 주요 군수공장들에 맡겨보았는데 나무랄 데 없이 잘 만들었다"고 치하한 것이 단적인 예다.

군수공장이 민간을 위해 공장을 돌린 것이다.

저자들은 "김정은 정권이 공고해지면서 김정일 시기에 탄생한 '선군정치'는 퇴락하기 시작했다.

선군정치의 종언은 북한이 정상 국가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김정은은 정상국가 확립과 경제발전 집중을 위해 군 위상을 약화시켰다"고 풀이했다.

"北, 제재 버틸 내구력 확보…제재지속 시 개방의지 꺾일 수도"
북한 경제의 또 다른 변화는 '경쟁'에서 찾을 수 있다.

전통적인 계획경제에서 기업은 국가 계획에 맞춰 할당된 수량만큼 생산하여 계약을 맺은 유통기관에 판매했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 들어 기업이 생산할 제품의 수량과 품목을 결정하도록 바꾸면서, 동종제품 생산기업 간 판매 경쟁이 생겨났다.

경쟁 결과는 수치로 확인된다.

매년 열리는 '전국 8월3일 인민소비품전시회'에 출시되는 제품 가짓수(노동신문 보도 기준)는 2017년 8만5천점, 2018년 28만7천300점, 2019년 38만5천700점으로 급증했다.

화장품의 경우 신의주화장품공장의 '봄향기' 브랜드가 독점하는 형태였는데, 이제 금강산합작회사의 '금강산', 묘향천호합작회사의 '미래, 평양화장품공장의 '은하수' 등이 치열하게 경합한다.

소비재부문 외에도 부동산시장, 노동시장 등 생산요소 시장도 형성되고 있으며 인트라넷을 활용한 온라인쇼핑몰도 성행한다.

"北, 제재 버틸 내구력 확보…제재지속 시 개방의지 꺾일 수도"
그러나 저자들은 희망적인 이야기만 하지는 않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가 북한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주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외국자본 유치를 전제로 하는 특수경제지대 개발은 사실상 시작도 못 했다.

미국이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해제' 입장을 고수한다면, 제재는 북한의 경제개방 의지 자체를 좌절시킬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저자들은 "북한이 제재 장기화에 대응하기 위해 과도한 자력갱생을 주장하게 되고, 이는 결국 북한이 '자폐경제'로 회귀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북한은 원료를 100% 수입해야 하는 금속, 화학 공업 핵심분야에서 지나치게 비용이 많이 드는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제철산업에 필수적인 코크스를 대신해 무연탄과 갈탄을 사용하는 '주체철'을 개발하는 식이다.

이는 남북 경제협력 시 산업 표준화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저자들은 김정은 시대 북한 경제의 명(明)과 암(暗)을 짚어나가며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자고 주문한다.

그러면서 국내외 정책결정자들에게 "유엔의 고강도 대북제재는 북한 경제에 강력한 타격을 주고 있지만, 북한은 이에 대응해 장기간 버틸 수 있는 체제 내구력을 확보했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대북제재만으로 북한을 굴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조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