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고 온라인수업 현장 가보니…집에서 화상채팅으로 열띤 토론
학생·학부모 만족도 높아…인프라·교사 지원은 아직 부족
방과후 국영수 내려놓고 심리학 공부…고교에 온라인수업 확산
"자, 여러분. 수업 시작할게요.

오늘은 '기억의 원리'에 대해 배워볼 거예요.

"
18일 오후 6시 30분 충남 당진시 당진고등학교 기숙사 건물 2층에서 이 학교 국어 교사 신영란 씨가 밝은 목소리로 심리학 수업을 시작했다.

신씨의 목소리를 따라 실내로 들어갔더니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신씨는 "기억에는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이 있다"며 허공에 대고 계속 수업을 진행했다.

신씨가 있는 곳은 교실이 아니라 '온라인 수업 스튜디오'였다.

벽에 붙은 대형 모니터를 보니, 학생 12명이 온라인으로 신씨 수업에 접속한 상태였다.

자기 집에서 수업을 듣는 듯 뒤쪽으로 침대나 옷장이 보이는 학생도 있었고, 학교 자습실인 것으로 보이는 학생들도 있었다.

집에 있는 학생들은 복장도 편한 사복 차림이었다.

방과후 국영수 내려놓고 심리학 공부…고교에 온라인수업 확산
신씨는 교탁에 있는 모니터와 카메라를 통해 학생들과 눈을 맞추며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난해한 심리학 용어들이 쏟아지는데도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수업을 들었다.

온라인이지만 조별 토론도 할 수 있었다.

신씨가 3명씩 조를 짜주고는 학생들에게 발언 권한을 부여하자, 같은 조로 묶인 학생들끼리 음성 대화가 가능했다.

함께 수업을 참관하던 당진고의 다른 교사가 "저 학생들 중에 당진고 학생은 3명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당진의 당진고·호서고·합덕여고·송악고, 아산 배방고, 천안 불당고·업성고, 공주 한일고, 청양군 청양고 등 충남 권역의 9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라고 설명했다.

당진고에서는 이런 온라인 공동교육과정이 올해 총 11과목 개설됐다.

학생들이 미래에 선택하고 싶은 전공을 미리 들어보는 수업(심리학, 교육학), 심도 있는 교양 수업(세계문제와 미래사회, 생태와 환경), 정규 수업에 도움이 되는 심화 수업(전기회로, 논술) 등 다양한 수업이 열렸다.

교사들은 처음에는 다른 학교 학생까지 가르친다는 부담에 온라인 수업 맡기를 꺼렸다.

그러나 학생들이 스스로 원해서 듣는 만큼 열정적으로 수업을 듣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점점 강좌도 늘어나는 분위기다.

신영란 씨의 경우에도 원래는 국어 교사지만, 심리학 전공을 살려 온라인 수업은 심리학으로 개설했다.

온라인 수업은 정규 수업 시간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하나의 교과수업으로 인정되고 시험도 치른다.

성적이 등급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성취도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된다.

방과후 국영수 내려놓고 심리학 공부…고교에 온라인수업 확산
학생들은 온라인 수업에 대한 높은 만족도를 드러냈다.

3학년 김수경 양은 "기존에 교육과정에 없던 수업을 들을 수 있고, 집에서도 들을 수 있는 등 장점이 정말 많다"면서 "과거 교육은 학생을 평가하는 데에 집중돼 있었는데, 온라인 수업은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2학년 배유미 양은 "컴퓨터로 수업을 하니까 필요한 정보·지식을 바로 찾아볼 수 있고, 타자로 글을 써서 의견을 표명할 수 있어서 좋다"면서 "같은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 함께 수업을 듣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들도 호평했다.

당진고 학부모운영위원장인 황규찬 씨는 "부모 입장에서는 사교육비를 절감하면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게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충청남도교육청은 지역 특성상 소규모 학교가 많고 학교 간 거리가 멀다는 단점을 장점으로 극복하고자 온라인 공동교육과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교육부는 2017년 온라인 공동교육과정 포털 프로그램 '교실온닷'을 구축하고, 시·도 교육청이 지역 여건에 맞게 온라인 수업을 활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첫해 6개 교육청, 지난해 11개 교육청이 참여했다가 올해부터는 17개 교육청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올해 2학기 기준으로 전국에서 154개 온라인 수업이 개설돼 학생 1천927명이 수강 중이다.

방과후 국영수 내려놓고 심리학 공부…고교에 온라인수업 확산
학생들의 학구열에 비해 교육 콘텐츠와 제반 시설은 아직 부족하다.

교육부는 내년까지는 학교당 최소 4개 교실에 무선망을 설치하고, 2024년에는 모든 학교 교실에 무선망이 깔리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교사들은 이런 수업 혁신에 교사 참여를 독려하려면 당국이 교사의 행정 부담을 경감해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당진고 김도경 교무부장은 "수업 외에 다른 행정업무를 맡지 않고 수업만 전담하는 교사가 있으면 좋겠다"면서 "교사는 결국 가르치는 사람이기 때문에, 수업전담교사가 생기면 3∼4과목을 맡더라도 다들 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성만 교사는 "학교당 교사 수가 행정학급 수 기준으로 정해지는데, 어떤 과목은 듣고 싶어하는 학생이 많아서 수업을 분반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교육과정과 수업 시수에 따라 교사 수를 더 지원하면 좋겠다"고 의견을 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