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재포럼 2019 함께 만드는 미래

■ 특별강연 - 반기문 前 유엔 사무총장
"과학기술 발달의 역설…준비 안된 4차 산업혁명 끝은 디스토피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사진)은 강연 내내 표정이 어두웠다. ‘2030년 어떤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는가’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우려의 말들을 쏟아냈다. 잠긴 목을 풀기 위해 물컵을 든 것만 네 차례였다. 반 전 총장은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4차 산업혁명이 인류를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로 이끌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역설적이게도 과학기술 발달로 고도 문명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며 “생산과 소비 방식 등 모든 생활 양식을 바꿔야 하는 인류세(Anthropocene:인류의 자연환경 파괴로 인해 지구의 환경 체계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류 번영 이끈 다자주의 흔들려

반 전 총장은 6일 서울 광장동 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2019’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이란 용어를 정의하며 특별강연을 시작했다. 미래 후손들이 써야 할 자원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지금 세대가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게 지속가능 성장의 속뜻이라고 강조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6일 개막한 ‘글로벌 인재포럼 2019’에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800여 석의 좌석이 꽉 차 일부 청중은 서서 강연을 들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6일 개막한 ‘글로벌 인재포럼 2019’에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800여 석의 좌석이 꽉 차 일부 청중은 서서 강연을 들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파리 기후협정과 유엔 2030 지속가능 개발목표(SDGs)의 성실한 이행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대안이라는 말이 이어졌다. 반 전 총장은 “SDGs는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파트너십이란 원칙하에 경제성장, 사회통합, 환경보전 등을 묶은 개발 전략”이라며 “17개 세부 목표가 예정대로 달성되면 양극화가 해소되고 배고픔으로 고통받는 사람도, 고칠 수 있는 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도 없는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밋빛 계획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반 전 총장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큰 전쟁 없이 이어져 온 인류 번영의 근간인 다자주의적 규범이 기반부터 흔들리고 있다”며 “세계 강국인 미국이 앞장서 최근 파리협정에서 탈퇴할 뜻을 나타낸 게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세계를 이끌고 있는 미국이 그들 스스로 서명하고 앞장섰던 협정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뒤집는 것은 정치적으로 굉장히 안 좋은 선례”라며 “경제적으로도 무책임하고 과학적으로 볼 때도 틀린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과학기술 발달의 역설…준비 안된 4차 산업혁명 끝은 디스토피아"

4차 산업혁명 부작용 대비할 때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이 일상으로 들어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도 했다. 신기술을 이해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을 가리키는 ‘인공지능 격차(AI divide)’를 해결하지 못하면 수많은 사회적 갈등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게 반 전 총장의 분석이다. 그는 “기계가 인간의 고유 능력인 판단과 학습 영역으로 들어왔다”며 “인구의 20%만 일하고 80%는 일할 필요가 없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란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 전 총장은 이어 새로운 유형의 사회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지를 놓고 국제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중요한 판단이 인공지능으로 이뤄지기 시작하면 ‘과연 인류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고, 사람이 로봇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기술 통제자로서의 자리를 지키려면 유엔 등 국제사회가 AI와 관련한 윤리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계시민 의식 높여 갈등 해결 나서야

반 전 총장은 새로운 국제적 합의를 위한 첫걸음으로 ‘세계시민’이란 공통된 의식을 꼽았다. 지구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불평등을 해결하려면 인류 전체를 포용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반 전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 재임 때 수많은 지구적 문제를 다뤘고, 수단 등 여러 곳의 분쟁지역을 방문했다”며 “세계가 지구촌으로 엮여 번영하면서도 일부에서 계속 반목과 대립하는 것은 세계시민 의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세계시민 의식이 한층 더 중요해졌다고 했다. 그는 “비행기를 타고 24시간이면 지구에서 못 가는 곳이 없고,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0.001초 내에 세계로 정보가 퍼지는 등 인류의 물리적 거리는 많이 좁혀졌지만 도덕적 거리는 상당히 멀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물인터넷(IoT) 기술로 만물이 연결되고 경제적·사회적 발전은 물론 지구적 차원에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려면 세계시민이란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고 협동 능력도 뛰어난 인재를 많이 길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순신/오현우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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