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구체적 지시한 경영진 실형
‘채용비리’로 무더기 기소된 경영인들의 형량을 가른 가장 큰 요인은 ‘노골적인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였다. 이석채 전 KT 회장은 지난달 30일 유력 인사의 자녀와 지인 11명을 부정 채용한 혐의(업무방해)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앞서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은 30여 명을 부정 채용한 혐의로 2심에서 징역 8개월을, 김모 전 IBK투자증권 부사장은 자신의 논문을 심사하는 지도교수의 조교 한 명을 채용청탁한 혐의로 집행유예를 받았다. 함영주 전 KEB하나은행장과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도 같은 혐의로 채용비리 관련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이 청탁받은 지원자 인적사항을 채용 부서에 전달했고, 불합격 지원자를 합격으로 바꾸라고 직접 지시했다”며 “이 전 회장이 부정 채용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김 부사장 사건 재판부는 “피고인이 노골적으로 부정한 행위를 지시하거나 구체적인 보고를 받지 않은 점”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KT 사건은 공개채용 절차 중 서류전형과 인·적성 검사가 끝난 상황에서 이 전 회장 지시로 청탁 대상자를 중도 합류시키기까지 했다는 증언이 나와 재판부가 다른 사건보다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사건에서 변호인들은 공통적으로 “사기업은 채용 재량권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 재량권이 무한정 보장될 수는 없다고 봤다. 이 전 회장 사건 재판부는 “합격자 결정이 합리적 근거 없이 추천 대상이라는 이유로 이뤄졌다면 공공성 유무나 정도를 따질 것도 없이 대표자 또는 전결권자의 권한 밖”이라고 지적했다. 채용비리로 인해 불합격한 ‘피해자 수’도 형량에 영향을 미친다. 이 전 회장 측 변호인도 “KT 사건은 피해자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형량이 너무 높다”고 항소 이유를 밝혔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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