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 "오지선다로 미래인재 뽑으라니"…"수능에 서술형 도입 검토해야" 목소리도
'정시 확대' 공정할까…"고소득층·사교육에 유리" 지적도

정부가 교육 불공정 논란을 해소하겠다며 '주요 대학 정시모집 확대'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교육계 일각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야말로 공정하지 않은 시험이라 제대로 된 처방이 아니라는 지적이 여전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오전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민들께서 가장 가슴 아파하는 것이 교육에서의 불공정"이라면서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연설 직후 교육부는 서울 주요 대학을 위주로 수능 비율 확대를 권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지난해 공론화 결과 2022학년도에 정시를 30%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으므로 당장 추가 정시 확대는 없다는 방침을 유지해왔으나 결국 정책 방향을 틀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관련 의혹 이후로 정시 확대 여론이 거세지자 여론의 요구를 일부 수용한 모양새다.

교육계에서는 정·수시 비율 논쟁을 떠나 현행 수능이 '획일적 일제고사'라 공정하지 않은 점이 있는데도 공정성 강화의 일환으로 정시를 확대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상당수 교육 관료와 학자들은 "수능이 한날한시에 똑같은 시험을 치른다는 점에서 일견 더 공정해 보이지만, 수능 같은 일제고사는 부모 소득이 높고 사교육을 더 받을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기회의 형평성으로 보면 더 불공정하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경제통계학 전문가인 최필선 건국대 교수와 민인식 경희대 교수가 부모 교육·소득 수준이 자녀의 수능 성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한 2015년 논문 '부모의 교육과 소득수준이 세대 간 이동성과 기회불균등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부모가 소득5분위와 소득1분위인 경우 자녀의 수능 성적이 1∼2등급인 비율이 최대 5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정시 확대'를 지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해 남녀 2천명을 조사한 결과 월 소득 400만원 이상인 응답자는 대체로 수능을 선호하고, 400만원 미만인 응답자는 '특기·적성'이 대입에 많이 반영돼야 한다고 답하는 경향을 보였다.

김재웅 서강대 교수, 강태중 중앙대 교수, 박상완 부산교대 교수 등 교육학자 3명은 올해 한국교육개발원 계간지에 투고한 논문에서 "교육의 공정성을 제도의 형식에 치중해 편협하게 인식하면 더 심층적인 불공정을 가릴 뿐"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대입 공정성을 강화하려면 지역균형선발·고른기회전형 등 약자 배려 전형 확대, 대학 입학전형별 출신고교·지역·사회계층 등 입학생 정보 공개, 학력 간 소득 격차 경감 등이 필수적으로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 이들 교수의 주장이었다.
'정시 확대' 공정할까…"고소득층·사교육에 유리" 지적도

대학 입학처 관계자들도 "교육적으로 역행하는 처사"라며 정시 확대 방침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박태훈 전국대학입학처장협의회장(국민대 입학처장)은 연합뉴스 통화에서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불만을 잠재우는 식의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것은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지난 10년간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조국 사태' 때 지적됐던 문제들은 이미 다 정리가 됐다"면서 "수능을 보고 배치표의 점수를 맞춰서 진학한 학생과 진로·적성에 맞춰 학종으로 진학한 학생 중에 어느 쪽이 미래 인재가 될 확률이 더 높겠느냐"라고 꼬집었다.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말만 하면서 주요 대학 신입생은 오지선다형 시험으로 뽑으라니 얼마나 짧은 생각이냐"면서 "인구 감소·재정난 때문에 대학들이 재정지원 1억원에도 목을 매기 때문에 따르지 않을 방도도 없다"고 푸념했다.

정부는 학종 비율이 과도한 서울 주요 대학에만 정시 확대를 권고하겠다지만, 상위권 대학의 입시 계획에 고교는 물론 중학교 교육까지 예속되는 한국 교육 특성상 사교육 시장 등에 미치는 파장이 상당할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수능 사교육이 다시금 확대될 것으로 우려되고 정부 역점사업인 고교학점제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면서 "교육적인 해법의 모색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접근으로 유감스러운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이날 문 대통령의 시정 연설 직후 입시·교육 관련 업체들의 주가가 급등했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교육적 가치와 정치적 가치가 충돌했을 때 궁극적으로 정치적 가치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수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쪽에서는 이제 서술형 도입 등 수능 내용을 바꿀 논의를 할 때가 됐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올해 국회 국정감사 기간에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성기선 원장을 비롯해 오세정 서울대 총장,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러 교육계 인사들이 수능에 서술형·논술형 문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