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첫 재판서 "구성원으로서 한 일…죄 안 된다" 무죄 항변
검찰 "보호하려 한 오너 일가와 전·현직 임직원 특정돼" 반박
'가습기살균제 자료은닉' 애경산업 前대표 "회사 위한 일" 주장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 관련 자료를 은닉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판매사 전 대표가 항소심에서 "회사의 범죄에 관해 구성원으로서 한 일이므로 개인의 죄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고광현 애경산업 전 대표의 변호인은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1부(이근수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서 이런 논리에 따라 법리적으로 죄를 물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증거인멸 행위는 피고인 개인 자격이 아니라, 애경이라는 기관의 구성원으로서 공식적인 의사결정을 거쳐 애경의 이익을 위해 한 일"이라며 "가습기살균제 판매로 인한 업무상 과실치사죄도 구성원 개개인이 아닌 애경 법인이 한 일"이라는 논리를 폈다.

이어 "증거인멸은 피고인이 개인 자격으로 한 것이 아니고,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의 공범인 애경이 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형법상 증거인멸죄는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은닉·위조했을 때 성립된다.

애경산업의 구성원으로서 애경산업의 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한 것이므로 개인에게는 죄를 물을 수 없다는 논리다.

변호인은 고 전 대표가 증거인멸을 교사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지시하기 전에 실행자들에게 이미 증거를 인멸할 고의가 있었다"며 증거인멸의 공범은 될 수 있어도 교사범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개인을 위해 한 일이 아니고, 물론 잘못된 일이라는 평가를 받을지는 모르지만 회사를 위해 한 일"이라며 1심의 형량도 너무 무겁다고 호소했다.

이에 검찰은 "애경산업이 직접 가습기 살균제 출시 관련자들 리스트를 만들어 전·현직 임직원 중 누가 처벌 가능성이 있는지 구분한 자료가 있다"며 "그 자료에는 고 전 대표 본인이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내용이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법인 자격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반드시 보호하려 한 오너 일가와 전직 임직원이 특정됐다는 사실을 입증하겠다"고 덧붙였다.

또 1심에서 일부 무죄로 판단한 고 전 대표 등의 범행도 충분히 입증된다며 유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매우 중요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피고인들은 대국민 사기극을 벌여왔다"며 "수단이 대담하고 실행이 조직적이며, 은닉한 증거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1심의 형량은 가볍다"며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전 대표 등은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하던 2016년부터 최근까지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한 자료를 숨기고 폐기한 혐의로 기소됐다.

앞서 1심은 고 전 대표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양모 전 전무에게는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