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 논란'에 정책 방향 변경…재지정평가 효과 떨어진 점 등도 고려
자사고·외고 '단계적 일반고 전환'→'일괄폐지' 급선회 배경은
정부가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국제고를 2025년에 전면 폐지하고 일괄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정책 방향이 수개월 만에 전환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14일 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교육부는 지난달 18일 당정청 협의회에서 2025년에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교육부는 이 방안에서 일괄전환을 위해 이르면 연말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교육부 방안에는 내년 예정된 자사고·외고·국제고 운영성과평가(재지정평가)를 아예 하지 않고 자발적인 일반고 전환을 지원하는 방안도 들어있다.

이는 교육부가 올해 8월 초까지 유지했던 정책 추진 방향을 2개월여 만에 전면적으로 선회한 것이다.

앞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등 교육부 관계자들은 자사고 등을 '전면 폐지'하기는 어렵다며 '단계적 일반고 전환' 방침을 수차례 강조해 왔다.

'고교입시 제도 개선, 교육청 재지정평가, 사회적 합의 통한 고교체제 개편'이라는 이번 정부 출범 초창기에 세웠던 3단계 로드맵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유은혜 부총리는 올해 자사고 재지정평가 최종 결과 발표를 앞뒀던 7월 말 기자간담회에서 자사고 전면 폐지는 검토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시행령을 고쳐서 일괄적으로 전환하려고 했으면 정부 출범 초기에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사고는 이미 5년 주기로 평가하게 돼 있고, 법에 근거해 절차를 밟게 돼 있기 때문에 그런 단계를 밟고 있는 것"이라면서 "올해 5년 주기가 된 학교들이 평가받은 것이고 내년에도 마찬가지로 그럴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내년에 (나머지 자사고와 외고 등에 대한 평가가) 끝나고 나면 그 이후의 과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도 8월 2일 서울 자사고의 올해 재지정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 내년까지는 재지정 평가를 하고, 자사고 존치 여부는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 논의해야 할 듯하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도 내년에 나머지 자사고 12곳과 외고·국제고의 재지정평가가 남아있는 만큼 올해 재지정평가를 받은 자사고들과 형평성을 맞춰 내년까지 재지정평가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했다.
자사고·외고 '단계적 일반고 전환'→'일괄폐지' 급선회 배경은
정부가 이처럼 정책 방향을 불과 2개월 만에 뒤집은 것은 조국 법무부 장관 자녀 문제로 불거진 '교육 공정성' 논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행 교육·입시 제도에 '특권과 서열화'가 있어 공정하지 않다는 국민 분노가 가중되자, 이를 역으로 이용해 대입 등 전반적인 교육 제도를 뜯어고치면서 고교 서열화 논란도 일거에 해소하겠다는 포석이다.

교육부 핵심 관계자는 "최근 교육 공정성 관련 여론이 불거지면서 고교 서열화 해소 방안도 논의의 폭이 넓어진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실제 지난달 당정청 협의에서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일괄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하면 정부가 입장을 변경했다는 비판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일괄 폐지안을 밀어붙일 근거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 번째 근거는 재지정평가의 정책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올해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을 받은 자사고 10곳이 '재지정평가가 부당했다는 본안 소송의 결론이 날 때까지 지정취소 처분 효력을 정지해달라'고 집행정지 신청을 내자 법원은 이를 모두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본안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수년 더 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고 내년에 재지정평가를 받는 학교들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또 교육부는 최근 불거진 대입 공정성 논란은 자사고·외고 등으로 인한 고입 단계의 '고교 서열화' 문제와 맞닿아있어 국민 요구에 대응할 필요가 있으며, 시·도 교육감 등도 일괄적인 일반고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일괄 전환 당위성이 충분하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사고 측에서는 불과 수개월 만에 정책의 큰 방향이 변경되는데 반발하는 기류도 있다.

홍성대 상산학원 이사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일수록 획일성보다는 다양성 교육을 해야 하는데, 다양성을 위해 도입된 자사고를 없앤다니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17년 동안 여러 보완과 개선을 거쳐 정립된 제도를 불과 두세달 생각해서 없앤다고 결정 내리는 것은 대단히 경솔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교육부는 "고교 서열화 해소 등에 대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아직 어떤 내용도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