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후 24년간 복직투쟁…'정년' 한달 앞두고 6월10일 고공농성 시작
"지상엔 투쟁 탄압하는 사람 많아서 올라와…의료진 접견 안 할 것"
철탑농성 넉달 김용희 "서초동 촛불 100분의1만 삼성 향했으면"

"의사 소견상 철탑을 내려가야 한다고 하면 내려가야 하잖아요.

그럴 바엔 아예 제 몸 상태를 모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의료진을 접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서울 강남역 교통 폐쇄회로(CC)TV 철탑 위로 올라가 넉 달째 고공농성을 벌이는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60)씨는 12일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단식을 했는데 몸 상태가 온전할 리가 있겠느냐"면서도 "몸 상태를 생각하면 내려갈 수밖에 없겠지만 그럴 바엔 제 몸 상태를 모르는 게 나을 것 같아 의료진을 접견하지 않기로 했다.

의료진도 제 뜻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의료진을 마지막으로 접견한 게 지난 7월10일이었다.

창원공단 삼성항공(테크윈) 공장에서 일하던 김씨는 경남지역 삼성 노동조합 설립위원장으로 추대돼 활동했다는 이유로 1995년 5월 말 부당해고 당했다며 삼성을 상대로 복직을 촉구하는 시위를 해왔다.

24년간 삼성에 맞선 그는 회사에 계속 다녔다면 원래 정년인 올 7월10일을 한 달 앞두고 강남역 CCTV 철탑 위로 올라가 농성을 시작했다.

복직할 때까지 끝내지 않겠다던 농성은 정년을 넘기고 계절이 바뀌며 넉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김씨는 "지상에 있을 때 투쟁을 탄압하고 못살게 구는 사람들이 많아서 올라왔다"며 "어떤 사람이 철탑에 올라오고 싶어서 올라왔겠느냐마는 차라리 철탑 위가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고 일어나면 팔뚝 한 번만 닦아도 수건이 시꺼메질 정도로 미세먼지가 말도 못 한다"며 "그래도 비닐 하나 깔고 노숙 투쟁한 적에 비하면 훨씬 나은 조건"이라고 했다.

고공농성과 병행한 단식 투쟁은 55일 만인 7월 27일 중단했다.

김씨는 도르래를 이용해 지상에서 올려주는 식사를 하루에 점심·저녁 두 끼 먹는다.

50㎏까지 빠졌던 몸무게는 65㎏까지 회복했다.

철탑농성 넉달 김용희 "서초동 촛불 100분의1만 삼성 향했으면"

그러나 다른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삼성은 여전히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김씨는 "그동안 삼성에 알릴 만큼 알렸다"면서도 "제가 원하는 것은 24년간 받지 못한 임금과 위자료, 삼성의 사과와 명예복직"이라고 말했다.

철탑 위에서 하루 대부분 시간을 독서로 보낸다고 했다.

책도 지상에서 도르래로 올려준다.

김씨는 "최근에는 한국 역사책에 푹 빠져 있다"며 "우리 시대 위정자들이 과거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요즘 조국 사태만 봐도 그래요.

대통령, 정치권이 국민들을 화합시키지는 못할망정 분열시키고 보수·진보가 경쟁적으로 촛불 집회를 하고 있잖아요.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과거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 같아요.

"
김씨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방문한 일을 두고 "대통령이 뇌물 공여 혐의가 있는 이 부회장을 만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하고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것은 삼성이 아니라 노동자들"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25일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25일은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한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이다.

매주 토요일 서초동에서 열리는 촛불 집회를 바라볼 때마다 김씨의 마음은 복잡하다.

그는 "서초동에 있는 촛불의 100분의 1이라도 삼성을 향했으면 할 때가 있다"며 "삼성의 무노조, 노동 탄압 등에 대해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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