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조 청소·음식쓰레기 수거 동행 취재기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의 촉매가 된 것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냄새'였다.

봉준호 감독은 냄새가 은밀하게 결정하는 계층 간 차이를 예리하게 짚어냈다.

나는 그나마 체취를 관리할 수 있다지만 어쩔 수 없이 지독한 '냄새'와 함께 일해야 하는 이들은 어떨까.

오·폐수 정화조를 청소하는 정화공, 쓰레기를 수거하는 환경미화원은 체취로 갈리는 세상에서 어떻게 지낼까.

짧게나마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봤다.

[인턴액티브] 기택네-박사장네 가르던 '냄새'…악취 작업장에 가다
지난 20일 새벽 4시,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평소 같으면 한창 꿈나라에 빠져 있을 시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이물질이 묻어도 티가 나지 않을 검은색 옷을 챙겨 입었다.

며칠 전 빨아둔 옷에선 섬유유연제 향기가 났다.

현관을 나서기 전 마스크를 챙길까 잠시 고민했지만 관뒀다.

오늘의 목표는 냄새를 직접 맡는 것이니까.

5시가 되기 10분 전 서울 성동구 답십리의 한 사무용 빌딩 앞에 도착했다.

주차장엔 정화조 청소 노동자 네 명이 모여 있었다.

긴 호스를 매단 정화조 청소용 대형 트럭과 함께였다.

"오늘은 '뻘'이 얼마나 되려나", "후딱 마무리하고 들어갑시다.

"
정화조 내부에 찬 오·폐수를 호스로 빨아들여 1차로 제거하는 일은 보통 지자체의 위탁을 받은 청소업체가 한다.

이 작업 후에도 정화조 안에 남은 쓰레기나 점성이 높아 미처 빨려 나가지 못한 진흙 같은 노폐물(정화공들은 '뻘'이라고 불렀다)은 전문 장비를 갖춘 민간 업체가 최종 처리한다.

이날 만난 정화공 네 명은 바로 이 '뻘'을 치우는 이들. 네 명 중 손모(50대)씨만 멜빵바지 형태의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그가 이날 뻘을 치우러 정화조 안에 들어갈 당번이었기 때문이다.

"돌아가면서 정화조 안에 들어가요.

직접 뻘을 치우는 일이 아무래도 냄새도 가장 심하고 위험하니까요.

"
손씨를 보조할 강모씨가 건물 지하층 정화조실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인상이 절로 찌푸려질 정도로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났다.

얼른 손으로 코를 막았지만 숨 쉴 때마다 느껴지는 지독한 악취는 막을 수 없었다.

코를 움켜쥔 인턴 기자들과 달리 작업자들은 표정 변화가 없었다.

"냄새가 심하지 않느냐"고 물어도 "익숙해지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올 뿐.
"물이 한 40에 뻘이 60 정도 찬 것 같아."
경력 10년이 넘었다는 강씨는 한눈에 정화조 내부 상태를 진단했다.

강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씨가 정화조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5m 정도 깊이의 공간에 내려가는데도 밧줄에 몸을 묶는 등 별도의 안전장치 없이 사다리에만 의지해 위태로워 보였다.

아들과 함께 청소 일을 보조하러 온 이모씨는 질식사고 등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 진공 호스를 리모컨으로 통제하기 위해 정화조실 밖에 남았다.

이씨의 아들은 정화조 안을 비출 전등을 아래로 내리는 등 보조 역할을 맡았다.

"진공 켜!"
강씨가 찌꺼기를 빨아들일 진공 호스를 작동하라고 지시하면서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다.

정화조 속에서 호스로 열심히 뻘을 빨아들이는 손씨의 등이 작은 구멍을 통해 보였다.

호스는 폐수와 찌꺼기를 빨아들일 때마다 요동쳤다.

세 명의 팔뚝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두툼한 호스가 요동치는 것을 막기 위해 두 명의 작업자가 달라붙어 고정했다.

[인턴액티브] 기택네-박사장네 가르던 '냄새'…악취 작업장에 가다
"튀니까 조심하세요.

" 작업이 진행될수록 정화조 주변은 까맣게 더럽혀졌다.

작업자들의 몸에도 찌꺼기가 묻었다.

간혹 인턴 기자들에게도 검은 물질이 튀었다.

당연히 악취도 더 심해졌다.

안 맡던 냄새를 계속 맡고 있으려니 머리가 아팠다.

숨 쉬는 게 괴로울 정도였다.

호스 진동 소리로 시끄러운 가운데 강씨는 소리를 질러 정화조 속 손씨의 상태를 체크했다.

"냄새 괜찮아? 심한데!" 하고 강씨가 크게 외쳐도 작업에 몰두한 손씨는 대답할 겨를도 없어 보였다.

호스 소리가 잠시 멈추는 순간순간 그의 가쁜 호흡 소리가 구멍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들이 시험 기간이라 그런데, 좀 조용히 해 주세요". 작업 도중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작업 중인 사무용 빌딩 부근에 사는 주민이 찾아와 민원을 제기한 것. 청소일은 모두가 잠든 새벽에 주로 하는 탓에 종종 벌어지는 일이라고 했다.

강씨는 "이럴 때면 죄송하다고 말하는 게 상책"이라고 했다.

호스로 찌꺼기를 흡입하는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다음 작업이 이어졌다.

호스가 빨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큰 찌꺼기는 '깡통'이라 불리는 플라스틱 양동이에 담겨 올라왔다.

변기에 버린듯한 칫솔부터 나무판자까지 종류는 다양했지만 색은 전부 새까맸다.

양동이에 담기에 너무 큰 물건은 손씨가 밧줄에 동여매서 위로 올려보냈다.

강씨는 손씨가 올려보낸 길이 1m가량의 나무판자를 받아 올리다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기도 했다.

오수를 머금어 무거워진 물건을 받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정화조 속으로 떨어지는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한 시간 반에 걸친 작업이 끝나자마자 손씨는 동료가 건네는 비타민 음료를 마다한 채 청소 차로 뛰어갔다.

차에 달린 또 다른 호스에서는 정화공이 씻을 수 있도록 물이 나왔다.

손씨는 그 자리에서 옷을 입은 채 얼굴과 팔 등을 씻었다.

"작업 끝나면 바로바로 씻는 편이에요.

그래야 냄새가 그나마 덜 해요.

"
[인턴액티브] 기택네-박사장네 가르던 '냄새'…악취 작업장에 가다
정화조 밖으로 나와서도 작업은 이어졌다.

청소하느라 건물 내부에 묻은 찌꺼기를 물을 뿌려 제거하고 진공 호스를 정리하는 일이 남은 것. 손씨가 몸을 씻는 동안 나머지 3명이 일을 마무리했다.

고작 한 시간 반 정도 현장에 있었을 뿐이지만 밖으로 나오니 '살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코를 찌르던 냄새에서 드디어 벗어났기 때문.
이날 동행 취재한 정화조 2차 청소를 하는 민간업체뿐 아니라 1차로 정화조 오·폐수를 치우는 이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집 주변 등에서 흔히 접하는 '정화조 아저씨' 말이다.

수소문 끝에 부산 동래구청이 위탁한 업체에서 일하는 김권상(61)씨의 연락처를 얻을 수 있었다.

정화조 청소 경력이 자그마치 30년이라고 했다.

김씨는 정화조 오·폐수 흡입 작업을 주로 해 왔다.

서울 답십리에서 만난 정화공과는 달리 매번 정화조 안에 들어가진 않아도 된다지만 그에겐 다른 고충이 있었다.

정화조에 호스를 넣는 것만으로 청소가 되는 게 아니기 때문.
"흡입 동력을 제공하는 수중 모터나 호스에 끼인 찌꺼기, 오수 흡입 뒤에도 남은 오물은 긴 갈고리 등을 이용해 사람이 일일이 긁어내야 합니더."
[인턴액티브] 기택네-박사장네 가르던 '냄새'…악취 작업장에 가다
김씨는 정화조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땐 비위가 상해 밥도 먹기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먹어야 사니까 이젠 밥은 먹게 됐지만 청소 일 시작하고 나서부턴 대중교통 이용 안 합니더. 버스 타면 모세가 홍해 가르듯 사람들이 나를 피하는 기라."
문득 20일 답십리 동행 취재를 마친 뒤 귀갓길이 떠올랐다.

두 시간 남짓 시간에 그새 몸에 뱄는지 특유의 냄새가 택시를 탄 나에게서 느껴졌다.

택시 기사에게 불편을 줄까 싶어 창문을 슬쩍 열었다.

머쓱하게 "기사님, 냄새 안 나요?"하고 묻자 "좀 나는데, 나면 뭐 어때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택시 기사의 배려 섞인 반응에도 집에 들어가 샤워를 할 때까지 내내 신경이 쓰이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날 하루 견디면 됐지만 정화조 청소 노동자는 매일매일 느낄 터. '똥차'가 내 옆을 지날 때 무심코 미간을 찌푸렸던 내가, 영화 '기생충'의 박 사장처럼 누군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진 않았을지 돌아보게 됐다.

[인턴액티브] 기택네-박사장네 가르던 '냄새'…악취 작업장에 가다
전북 전주시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는 김대영(52)씨와 동행 취재를 한 건 또 다른 날. 그는 악취보다 참을 수 없는 건 따로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요즘 이런 일은 대부분 지자체가 하청을 주는데 민간업체가 더 많은 수익을 남기려 하다 보니 작업 환경의 개선, 근로자 복지로 가야 할 비용이 줄어든다"고 꼬집었다.

그는 "냄새로 인한 불쾌감, 불편함은 참을 수 있다"며 "(지자체에) 직접 고용이 돼서 쓰레기 수거 노동자의 삶의 질이 향상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는 "상류층은 위험이나 악취 같은 불편으로부터 철저히 벗어나서 살 수 있는데 반해 육체노동자는 영화 '기생충'의 반지하라는 공간을 작업환경에 대입했을 때와 같은 상황에 처한 것"이라고 봤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윤태 교수는 "오물 처리 등 사회적으로 꺼리는 일을 하는 이들은 다른 직종보다 높은 급여와 복지를 제공하는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우리가 잠든 사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악취와 싸우는 이들. '3D 업종'이라는 딱지를 붙여놓고 열악한 처우와 외주화를 당연하다고 바라보기에는 우리 대신 그들이 감내하는 냄새의 여운이 너무도 강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