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왁자지껄
사후 자기 결정권 보장돼야
서울 광화문역 앞에 만들어진 '탈북 모자' 추모 분향소. 정부가 이들을 무연고자로 지정하면서 탈북민 단체들이 장례를 치러주기 어렵게 됐다. /연합뉴스

서울 광화문역 앞에 만들어진 '탈북 모자' 추모 분향소. 정부가 이들을 무연고자로 지정하면서 탈북민 단체들이 장례를 치러주기 어렵게 됐다. /연합뉴스

“20년을 같이 살았는데 법적 부부가 아니라서 아내의 시신을 내어줄 수 없다고 합니다. 법이 그렇대요.”

지난해 5월 A씨는 아내인 강모씨를 떠나 보냈다. 혼인신고를 하지 못했어도 20여년 간 함께 산 사실혼 관계였다. 그러나 A씨는 아내의 장례를 치러주지 못했다. 법적 배우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강씨가 사망한 병원에서 시신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관할 구청에서는 강씨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들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결국 강씨는 ‘무연고 사망자’가 됐다. A씨는 “장례만 치러줬어도 마음이 가벼웠을 것”이라고 했다.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나눔과나눔’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무연고 사망자는 약 2500명으로 집계됐다. 2013년 1280명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무연고 사망을 예방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지만 장례 등 ‘죽음 이후’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실정이다.

◆“친족만 장례 가능…‘삶의 동반자’로 확대해야”
지난 6월 비영리단체 '나눔과나눔'이 지원한 무연고자들의 장례식.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돼 어린이병원에서 숨진 아기의 명패 앞에 내복과 바나나 우유가 놓여져 있다. 나눔과나눔 제공

지난 6월 비영리단체 '나눔과나눔'이 지원한 무연고자들의 장례식.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돼 어린이병원에서 숨진 아기의 명패 앞에 내복과 바나나 우유가 놓여져 있다. 나눔과나눔 제공

무연고 사망자는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찾을 수 없거나 연고자에게 거부당한 사망자를 이른다. 연고자가 있어도 가족관계가 단절됐거나 어려운 생계 등의 이유로 시신 인수를 거부하면 무연고 사망자가 된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무연고자로 분류된 시신은 매장 또는 화장돼 10년간 봉안된다.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는 인간이 스스로 죽음 이후를 준비할 수 있는 ‘사후 자기결정권’을 주제로 하는 국제 심포지엄이 화우공익재단 주최로 열렸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박진옥 나눔과나눔 상임이사는 “한국의 무연고 사망자를 연령대로 보면 64세 이하 중장년층이 상대적으로 많고, 성별로 보면 남성이 여성의 3.6배”라며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실업이 증가하고 가족이 해체되며 사회적으로 ‘고립’됐던 사람들이 늘어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무연고 사망자의 사후 처리에 대한 정부 정책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실혼 관계라는 이유로 아내의 장례를 치르지 못한 A씨가 대표적이다. 현행법상 ‘연고자’는 배우자, 자녀, 부모, 자녀 외 직계비속, 부모 외 직계존속, 형제·자매 등이며 이 순서대로 시신을 구청에 위임(시신 거부)할 수 있다. 즉 혈연 관계나 법적 가족이 아니면 장례를 치를 수 없다. 양육시설에서 함께 자란 친구가 사망해도 다른 친구들이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독거노인을 수년간 돌봐왔던 요양보호사가 노인의 가족 대신 장례도 치를 수 없는 이유다.

지난달 서울 관악구에서 숨진 채 발견된 탈북민 모자도 무연고 사망자가 됐다. 이들의 사연이 세간에 알려지며 탈북민 단체 등이 장례를 치르려고 나섰지만 연고자가 없었다. 양희철 법무법인 명륜 변호사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혈연관계인 연고자가 시신을 위임할 경우 사망자와 삶을 함께했던 사람들이 장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실질적 사후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화우공익재단 설립 5주년을 맞아 '사후자기결정권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좌장인 정현경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가 사회를 보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화우공익재단 설립 5주년을 맞아 '사후자기결정권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좌장인 정현경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가 사회를 보고 있다.

◆일본, 대만은 ‘장례절차 사전 계약’ 인정

한국처럼 유교 국가였던 일본과 대만 모두 가족 공동체가 붕괴하면서 무연고 죽음과 장례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에는 개인이 죽은 후 장례절차는 물론 자산 관리 등을 포함해 사후 업무를 처리하는 단체와 기업이 다수 등장하고 있다. 개인의 사후 사무를 위임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장례를 지원하는 단체인 ‘LISS 시스템’의 마츠시마 조카이 대표는 “1992년 일본 최고재판소가 개인이 사후 사무를 위임하는 계약을 할 수 있다는 판결을 냈기 때문에, 가족과 고립돼 홀로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사후 재산 관리와 장례 등 절차를 미리 결정하면 부탁받은 사람은 이를 이행할 권한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생활보호법을 통해서도 연고자가 아닌 사람이 장례를 치르겠다고 하면 지방자치단체나 보호기관이 이를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만에서도 2002년 발표된 장례행정법 61조에 따르면 성인은 유언장이나 유서에 자신의 장례 절차에 대한 내용을 작성할 수 있고, 후에 장례를 치르는 가족이나 업체는 이 내용을 따라야 한다. 왕안기 국립대만대학교 연구원은 “타이베이, 가오슝 등 도시에서는 정부가 무연고 사망자나 취약계층을 상대로 공영장례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며 “인구의 17%가 불교인 점을 감안해 불교, 개신교와 천주교 등 종교별 장례를 치른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도 지난해 ’누구나 존엄하게 삶을 마감해야 한다‘는 취지로 서울 지역 무연고 사망자와 저소득층의 장례를 지원하는 ‘공영 장례 조례’를 시행했다. 보건복지부가 다른 지자체에도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치러줄 것을 권고하면서 경남 김해시 등 일부 지자체들도 이를 도입하고 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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