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장애인들에게 복지 서비스 대신 현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자기가 원하는 복지를 고르면 개인별로 서비스 수가에 따라 현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복지를 책임지겠다며 사회서비스인력을 직접 채용하는 등 ‘공공성 강화’를 정책 기조로 내건 상황에서 장애인에게 현금까지 지급하게 되면 예산 부담이 급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 "장애인에 복지서비스 대신 현금 주겠다"
장애인에게 수가에 따라 현금 지급

17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시 장애인정책과는 장애인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장애인 개인예산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시범사업 선정을 위한 용역을 최근 발주했다. 장애인 개인예산제는 서울시가 장애인에게 현금을 지급해 원하는 서비스를 민간에서 고를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장애인들을 국공립 시설에 일괄적으로 수용하거나, 특정 분야에만 쓰도록 바우처를 지급해온 기존 제도보다 한발 더 나아간 셈이다.

개인예산제는 장애인이 작성한 복지플랜을 서울시가 제출받은 뒤 서비스 수가에 따라 장애인들에게 현금을 직접 지급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중개기관을 통해 보조인력을 구하는 경우 대기가 너무 길다는 문제가 제기돼 시작한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정경철 해뜨는양지장애인자립생활센터 국장은 “예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가 장애인들의 모든 복지수요를 직접 책임질 수는 없을 것”이라며 “장애인들이 직접 원하는 서비스를 선택해 만족도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중증장애인은 지금보다 외면받을 것”

시민단체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조현수 전국장애인철폐연대 정책실장은 “지금도 중증장애인들은 민간단체로부터 제대로 된 활동지원인력을 공급받을 수 없는 탓에 정부가 직접 인력을 지원하겠다며 사회서비스원을 도입하는 상황”이라며 “장애인끼리 구매경쟁이 일어나면 최중증장애인의 경우 활동보조인력들이 꺼리면서 더욱 질 낮은 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현재 발달장애인인 A씨가 활동보조인력을 지원받으려면 주민센터에 가서 지원신청서를 작성한다. 이를 토대로 국민연금관리공단이 A씨에게 필요한 서비스 시간을 판정하고, 그 시간만큼 일할 수 있는 활동보조사를 비영리민간단체인 중개기관이 매칭시켜 준다. 개인예산제가 도입되면 중증장애인은 웃돈을 주고 민간업체를 통해 구하거나 직접 활동보조사를 고용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개인예산제는 정부와 서울시가 사회서비스원을 설립해 직접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공공성 강화를 추진해온 것과는 정반대 기조여서 이중의 예산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제도를 악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개인예산제 우선 적용 대상으로 논의되는 발달장애인의 경우 활동보조인력을 소개하는 민간업체에서 중개수수료를 많이 떼어가는 식으로 악용할 소지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점들 때문에 보건복지부도 그동안 개인예산제 시행에 신중한 견해를 고수해 왔다. 서울시는 지난해 5월 복지부 사회보장위원회에 개인예산제 신설 협의를 요청했다가 대상자 선정 기준이나 급여지급 방식 등을 보완하라는 취지로 재협의 통보를 받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내년 초까지 개인예산제 급여지급방식, 서비스 단가표, 예산 규모 등을 용역으로 추산할 것”이라며 “용역 결과를 토대로 추가 논의를 통해 복지부에 신설 협의를 다시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