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고될지라도…
"결혼하란 잔소리 들을 바엔 출근이 낫죠"

추캉스 대신 호캉스
"연휴도 짧은데 호텔에서 힐링할래요"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 코앞이다. 가족과 함께한다는 기쁨에 연휴를 앞둔 직장인의 마음은 설렌다. 하지만 ‘명절포비아(명절+공포증)’를 떠올리며 시름에 잠긴 직장인도 적지 않다. 이들을 ‘슬프게 하는 것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척의 잔소리뿐만 아니다.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면 어떻게 해야 할지, 추석 선물은 뭘로 할지 등 다양하다. 친척들한테는 욕 얻어먹을 각오를 하고 아예 여행을 떠나는 직장인도 있다. 한가위를 앞두고 울고 웃는 김과장 이대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과장 & 이대리] 코앞으로 다가온 추석…울고 웃는 직장인들

올해도 고민은 ‘풍년’

소프트웨어 벤처기업에 다니는 안 대리(31)는 요즘 해 뜨기 전 출근해 저녁 늦게 퇴근하는 고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주에 급조된 태스크포스(TF)팀에 합류하면서다.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마음만은 즐겁다. TF팀은 추석 연휴에도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올 추석에도 ‘결혼하라’는 어르신들의 잔소리를 생각하면 짜증이 난다”며 “차라리 연휴 때 일하고 휴일 수당을 받는 게 낫다”고 말했다.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일하는 이 과장은 상황이 좀 다르다. 그는 추석 연휴 때 독일로 출장을 간다. 업무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다음달 출산 예정인 아내를 두고 출장을 가려니 눈치가 보인다. “만삭인 아내가 연휴 내내 첫째 아이까지 돌봐야 합니다. 가시방석에 앉은 마음이죠.”

추석 선물이 고민인 직장인도 있다. 중소기업 총무부에서 일하는 한 대리는 한 달 전부터 추석 선물 때문에 머리를 싸맸다. 명절 때마다 총무부에서 임직원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데 이번에도 결정이 쉽지 않아서다. 참치와 햄, 식용유 등 먹거리는 젊은 직원들에게 인기가 없다. 부피가 크거나 무거운 선물도 기피 대상 1호다. 작년에는 홍삼 선물세트를 골랐다가 “몸에 홍삼이 맞지 않는다”는 불만도 들었다.

한 대리는 “차라리 돈으로 주자는 의견도 내봤다”며 “하지만 명절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는 지적에 올해도 일단 선물을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심 끝에 선물을 골라도 꼭 누군가는 군소리하기 마련이라 매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소연했다.

‘추캉스’ 떠나는 직장인

이번 추석 연휴(9월 12~15일)는 나흘간으로 짧은 편이다. 이 때문에 올해는 해외 여행을 떠나는 ‘추캉스(추석+바캉스)족’이 예년보다 많지 않을 것으로 여행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대신 국내 여행을 가거나 가까운 호텔에서 연휴를 보내는 직장인이 많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제약회사에 다니는 박 대리(33)도 그런 사례다. 그는 지난달 양가 부모님과 친척, 고향에 계시는 외조부를 미리 찾아뵀다. 추석 연휴를 아내와 둘이서 오롯이 즐기기 위해서다. 박 대리 부부는 추석 연휴 중 하루는 서울에 있는 호텔에서 바캉스를 즐길 예정이다. 그는 “귀성·귀경길 전쟁에 치이다 보면 연휴가 평소보다 더 힘들다”며 “이번엔 연휴 기간도 짧아서 차라리 푹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차례를 간소화하거나 없애는 가정도 늘고 있다. 부산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김 과장(35) 얘기다. 김 과장은 “지난해부터 아내를 제외하고 우리 가족끼리만 차례를 지내기로 했다”며 “집안 조상님들을 생전 본 적도 없는 친척까지 고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정유회사에 근무하는 최 대리는 추석 때 집 근처에 있는 고급 일식집을 예약해 부모님을 모실 계획이다. 각종 명절 음식을 만드느라 고생하는 아내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최 대리는 “부모님은 뭐하러 이런 데 돈을 쓰냐고 핀잔을 줬는데 이내 좋아하셨다”며 “효도도 하고 아내의 부담도 덜어주기 때문에 일석이조”라고 강조했다.

짝을 구하기 위해 소개팅에 나서는 직장인도 있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김 과장이 그렇다. 결혼은 언제 할 거냐는 할머니의 성화를 듣기 버거워 일부러 명절에 소개팅을 잡았다. 부모님은 오히려 추석 당일에도 소개팅하고 오라고 등을 떠밀었다.

조카 모시러 갑니다

교육 업체에 다니는 손 주임(28)은 올 추석 연휴를 앞두고 걱정이 생겼다. 그는 지난 3월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는데 처음으로 용돈을 받는 게 아니라 주는 입장으로 고향에 내려가게 됐기 때문이다. 사촌 동생들에게 용돈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하지만 부담이 작지 않은 게 사실이다. 손 주임은 “용돈을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아직 월급이 많지 않아 생활비로 쓰기도 빠듯하다”며 “사촌 동생들에게 얼마씩 줘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서울의 한 정보기술 회사에 다니는 정 대리는 명절에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새로 구입한 보드게임 2~3개를 가져간다. 친척들이 모여 TV만 뚫어져라 보는 게 심심해서 몇 년 전 보드게임을 하나 가져갔던 게 계기가 됐다. 정 대리는 “어린 조카들이 많아서 가져갔는데 고모와 삼촌 등 너나 할 것 없이 게임을 즐기게 됐다”며 “게임하며 친척들과 왁자지껄 떠들다 보면 진짜 명절 기분이 난다”고 말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