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경북형 사회적 경제
신길호 前 노다지마을 대표

포항 동해면에 세운 마을기업
6년 만에 매출 10억 '성공 모델'로
직원 23명 중 마을 주민이 9명
낙안면 "기업가 정신 불어넣어달라"
김은래 노다지마을 대표(앞줄 왼쪽 네 번째)와 직원들이 건물 앞마당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노다지마을 제공

김은래 노다지마을 대표(앞줄 왼쪽 네 번째)와 직원들이 건물 앞마당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노다지마을 제공

경북 포항시 남구 동해면 금광1리 노다지마을의 신길호 대표(52·사진)는 올해 초 전남 순천시 낙안면장 공모에 민간인 신분으로 뽑혔다. 지방자치단체 행정의 야전사령관 격인 면장에 민간인이 발탁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활력을 잃어가던 농촌마을에 마을기업을 세워 다양한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실천한 도전정신, 성실과 경험이 큰 이유가 됐다.

그는 2013년 자본금 2000만원으로 시작해 매출 10억원의 마을기업을 일구고 고용을 23명까지 늘렸다. 2011년 도입된 행정안전부의 마을기업 가운데 지속적으로 고용을 늘리고 마을 주민들과 화합하며 미래를 개척한 1세대 마을기업인의 대표 성공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정착한 금광리는 6년여 만에 묵혀둔 밭이 많던 활기 잃은 마을에서 마을이름 ‘금광’처럼 노다지마을로 바뀌었다.

노다지마을 기업 일군 대표, 순천 낙안면장으로 스카우트된 까닭은…

신 전 대표는 해군사관학교 출신이다. 11년간 해병대에 복무한 뒤 포스코 협력사에서 일하며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 현지법인을 개척하고 운영을 총괄했다. 그는 한국보다 개발이 뒤처진 이들 나라가 비료와 농약에 덜 의존하면서 친환경적·과학적·조직적으로 농사짓는 것을 보고 귀농을 결심했다. 제2의 고향인 포항에서 마을주민 7명과 마을기업을 설립한 배경이다.

그는 변두리 산에 20년간 방치된 밤나무 농장 1만6500㎡를 임차했다. 이곳에 닭 1000여 마리를 방사해 유정란을 생산해 사업 기반을 마련했다. 대게 껍데기 가루 생산설비를 갖추고 미생물연구소도 설립했다. 키틴분해미생물로 특허도 획득하고 적정기술학회의 우수논문상까지 받았다.

신 전 대표는 “6년 전 외지인이 들어와 농사를 짓는다고 하자 동네 주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마을주민과 공존하며 성과를 내자 자신들의 묵혀둔 밭을 무상으로 내어주기까지 했다”며 “이런 과정을 거쳐 금광리 마을이 생기를 찾았다”고 말했다. 신 전 대표는 직접 경작하는 1만5000㎡와 마을주민 10여 명의 56만㎡ 농토에서 풋고추 귀리 배추 콩 감자 등 다양한 농산물을 재배해 ‘노다지마을’ 브랜드로 판매했다. 키틴분해미생물과 EM효소, 자닮식(자닮유황+자닮오일) 농업방재법, 유황합제 등을 이용한 친환경농법 보급을 확대하고 친환경 농산물 생산량도 점차 늘려갔다.

그는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청국장, 고추장, 치즈떡볶이떡 등 가공품 생산도 늘렸다. 그가 만든 청국장은 미국으로도 수출됐고 HACCP(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 기준) 인증을 받은 치즈떡볶이떡과 단호박떡은 최고 히트상품이 됐다. 체험교육도 진행해 지난해에만 2000여 명이 다녀갔다.

2016년까지 2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8억원, 올해는 1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2017년까지 5명이던 직원은 올해 23명으로 불어났다. 직원 가운데 금광리 주민이 9명이다.

그가 면장으로 가고 난 뒤 노다지마을 대표를 물려받은 부인 김은래 씨는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한 도전이었다”며 “오전 1시까지 일하고 5시에 일어나 다시 일한 6년의 세월이 이만 한 성과를 가져다주고 마을주민들로부터 인정받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2015년 간호사관학교에서 중령으로 전역해 노다지마을에 합류했다. 신 전 대표는 “고령화가 심한 농촌 마을이 활력을 찾기 위해서는 마을공동체를 통한 사회적 농업이 중요하다”며 “노다지마을에서의 경험을 활용해 낙안면민들과 함께 새로운 마을기업의 미래를 설계하고 도전해보겠다”고 강조했다.

포항=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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