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대 /사진=연합뉴스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대 /사진=연합뉴스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의 목소리가 두 달 넘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시위대가 홍콩국제공항을 점거하며 '항공대란'까지 일어나는 등 사태는 점점 격화되고 있다. 전 세계가 초긴장 상태로 예의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아이돌 그룹의 중화권 출신 멤버들이 중국 지지 선언을 쏟아내고 있어 이목을 끈다.

'범죄인 인도 법안' 갈등으로 촉발된 홍콩 시위는 홍콩 공항 폐쇄라는 초유의 사태를 빚어냈다. 중국 정부는 공항 점거에 대해 '테러리즘'이라는 표현을 쓰며 엄포를 놨고, 이에 중국이 무력 진압으로 직접 개입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시위대는 변함없이 주말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다.

점입가경인 홍콩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 우리 정부도 여행경보 발령을 검토 중이다. 한국인에 대한 직접적인 안전 위협이 없는 상황이라 지켜보고는 있지만 상황이 더 악화되면 여행경보를 발령하겠다는 방침이다.

안전 문제가 뒤따르는 바 예정됐던 연예계 일정에도 영향이 미치고 있다. 스케줄 취소와 무기한 연기가 불가피해진 것. 가수 강다니엘은 18일 개최하기로 했던 홍콩에서의 팬미팅을 연기했다. 소속사 커넥트엔터테인먼트는 "공연에 참석하는 아티스트와 스태프는 물론 팬 여러분들의 안전을 위한 결정이니 양해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그룹 갓세븐 역시 오는 31일부터 9월 1일까지 진행할 예정이었던 월드 투어 홍콩 일정을 전면 취소했다.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는 현지 상황으로 인한 안전 상의 이유라고 설명하며 구매한 전 좌석에 대해 취소, 전액 환불 처리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추후 업데이트 일정에 따라 티켓팅을 재진행한다고 했으나 홍콩사태의 향방을 예단할 수 없어 일단은 지켜봐야 하는 입장이다.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MAMA)' /사진=CJ ENM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MAMA)' /사진=CJ ENM
CJ ENM이 개최해오던 시상식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MAMA)'도 고민에 빠졌다. 그간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가 홍콩을 주무대로 열렸기 때문. 2012년부터 7년 연속 홍콩에서 시상식을 진행했고, 지난해에는 폐막식을 홍콩에서 하기도 했다. 그러나 홍콩을 개최지로 확정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 됐다. 현재까지 최종 개최지를 발표하지 못한 CJ ENM 측은 여러 지역을 염두에 두고 논의 중인 상태다.

홍콩은 K팝 아이돌들이 투어 지역에서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한류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아시아의 대표 문화 교류의 장이다. 그렇기에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며 홍콩 사태를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아이돌 그룹 내 중화권 출신 멤버들은 줄줄이 "하나의 중국"을 외치며 중국 지지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홍콩을 향해 "부끄럽다"는 말까지 더했다.

엑소 레이와 에프엑스 빅토리아, 워너원 출신 라이관린, 갓세븐 잭슨, 프리스틴 출신 주결경, 우주소녀 미기, 성소, 선의, (여자)아이들 우기, 차오루, WayV 윈윈, 루카스, 양양, 쿤, 샤오쥔, 헨드리, 세븐틴 디에잇, 준 등 중화권 출신 K팝 아이돌 스타들은 자신의 SNS에 "오성홍기에는 14억의 깃발 소지자가 있다. 나는 그중 하나다",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 등의 내용을 연쇄적으로 게시했다.
사진=빅토리아, (여자)아이들 우기, 라이관린, 잭슨 웨이보
사진=빅토리아, (여자)아이들 우기, 라이관린, 잭슨 웨이보
오성홍기는 홍콩과 대만, 마카오가 중국에 속하며 중국의 합법 정부는 중국이 유일하다는 '하나의 중국'을 의미한다. 중국에서 영토 분쟁이 있을 때마다 강조됐던 것으로 최근 홍콩 시위로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중국중앙방송(CCTV)은 시위 중 오성홍기가 훼손되자 '오성홍기 수호자는 14억명이 있다. 나는 국기 수호자다'라는 내용의 글을 웨이보에 올리고 공유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중화권 출신 K팝 아이돌들은 일제히 '하나의 중국'을 외쳤다.

특히 빅토리아는 중국 국기 사진을 올리며 "나는 중국을 사랑하고, 홍콩을 사랑한다. 홍콩은 중국의 홍콩"이라며 한 차례 더 정부를 지지하는가 하면, 레이는 "홍콩이 부끄럽고 수치스럽다"라며 홍콩 시위대를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더불어 홍콩 출신인 잭슨과 루카스, 대만 출신인 라이관린 등도 중국 지지 선언에 동참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빅토리아, 우기, 라이관린 /사진=한경DB
빅토리아, 우기, 라이관린 /사진=한경DB
이들은 왜 '중국 지지'로 똘똘 뭉치게 됐을까. 그 배경으로는 중국 시장의 규모와 활동의 제약 등이 거론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한경닷컴에 "중국시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연예 활동에서 제외하기가 어렵다. 현재 홍콩 상황에 대해 지지와 그렇지 않은 입장으로 나뉘어졌는데 중국 정부를 지지하지 않으면 중국 내에서 배제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면서 "홍콩의 목소리를 진압하는 경찰을 지지한다고 밝히는 게 씁쓸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

자의적이라고도, 타의적이라고도 보기 어려운 상황 속 결정한 '경제적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침묵할 수는 없었을까. 정덕현 평론가는 "가장 큰 문제는 현재 중국 내에서 묵비권도 인정되지 않는 분위기라는 것"이라며 "동의를 하라고 부추김을 당하는 분위기가 되면서 침묵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전했다.

실제로 최근 중국에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수의 기업들이 보이콧 대상이 됐고, 거센 비판 여론에 타격을 입어 사과를 하는 일이 벌어졌다. 모델들의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 홍콩과 마카오 등을 중국이 아닌 별도 국가로 표기했다는 게 그 이유였으며 삼성전자, 캘빈클라인, 베르사체, 코치, 지방시, 아식스, 스와로브스키 등이 대상이었다.

중국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중화권 아이돌들의 행보에 대중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연예 활동을 이어가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반면, 막강한 파급력을 지닌 K팝 아이돌들이 일제히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게 옳은 것인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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