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앞둔 기업인들은 상속과 증여에 대한 고민이 크다. 높은 상속·증여세율 때문만은 아니다. 상속 과정에서 자녀끼리 분쟁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기도 하고, 회사를 경영하다 미처 챙기지 못한 채무관계나 명의신탁 문제도 마음에 걸린다. 자산가의 상속과 증여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법무법인 태평양 가업승계팀의 이인재 고문변호사(아랫줄 왼쪽부터), 김지운·조일영·조윤진·송우철 변호사, 김동현 회계사(윗줄 왼쪽부터), 유철형·임채웅 변호사, 곽영국 세무사, 장성순·부광득 변호사.  /태평양  제공
법무법인 태평양 가업승계팀의 이인재 고문변호사(아랫줄 왼쪽부터), 김지운·조일영·조윤진·송우철 변호사, 김동현 회계사(윗줄 왼쪽부터), 유철형·임채웅 변호사, 곽영국 세무사, 장성순·부광득 변호사. /태평양 제공
법무법인 태평양은 2013년 국내 대형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상속 자문과 소송을 전담하는 가업승계팀을 구성했다. 6·25전쟁 이후 기업을 일으킨 ‘창업 1세대’가 고령으로 속속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던 때였다. 서울가정법원 상속재판부 재판장을 지낸 임채웅 변호사(사법연수원 17기)가 팀장을 맡아 변호사 등 30여 명의 상속 전문가를 이끌고 있다. <상속법 연구> <미국 신탁법> 저자인 임 변호사는 상속과 관련한 각종 숫자를 넣으면 자동으로 상속 재산이 도출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업무 효율성을 높였다.

임 변호사는 상속을 염두에 두고 있는 기업 오너들에게 “회사와 스스로를 한 몸으로 여기고 경영을 해왔다고 생각한다면 누구보다 먼저 상속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너의 돈과 회삿돈의 경계가 불명확한 중소기업이 많다는 판단에서다. 예를 들어 기업주가 회사에 필요한 자금을 자기 돈으로 사용했을 경우 회계장부상으로만 채권을 갖고 실제 통장 잔액에서는 빠질 수가 있다. 이런 때는 사정에 따라 증자를 통해 회사에서 받을 돈에 관해 해법을 마련할 수도 있다. 여러 사정으로 회삿돈을 가져다 써놓고 채무 형식으로 처리하기도 하는데 상속 과정에 문제를 남길 수 있다.

명의신탁도 상속의 걸림돌이 된다. 상당수 가족 기업 또는 1인 기업은 주식을 많이 갖고 있을 때의 불이익 때문에 친한 사람들에게 분산해 놓는다. 세무당국은 이런 형식의 명의신탁을 증여로 보고 과세하려 한다. 서류상의 주주가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오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상속인들 사이의 다툼도 고려해야 한다. 태평양 관계자는 “상속세 신고는 한 명만 해도 되는데 가족 분쟁으로 여러 명이 신고를 하면 세금 납부액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진다”며 “사전에 합의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유언장에다 ‘사후에 (경영 능력이 있는) 둘째 아들이 기업을 인수하는 것에 대해 3년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큰아들에게 50억원을 준다’고 써놓기도 한다.

임 변호사는 “최근 들어 유언장을 작성해달라는 의뢰가 많다. 하루에 2~3건 들어올 정도로 상속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유언장이 있더라도 소송 자체를 막을 수는 없기 때문에 금융사의 신탁상품을 소개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태평양 가업승계팀에는 임 변호사 외에 대법원 재판연구관(조세팀장)과 서울행정법원 조세전담부 부장판사를 맡았던 조일영 변호사(사법연수원 21기), 지배구조와 세무조사에 강점이 있는 김동현 회계사, 사전 세무진단 업무를 오래 담당한 곽영국 세무사 등이 배치됐다. 이인재 전 서울중앙지방법원장(9기)과 오세립 전 서울서부지방법원장(3기)이 고문을 맡고 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