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앞에서 시민단체 에너지시민연대가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앞에서 시민단체 에너지시민연대가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국내 한 대기업 사내 익명게시판에서는 ‘에어컨 온도’로 설전이 오갔다. 지난달 말 실내 온도가 26~27도 수준이던 사무실에서 더위를 느낀 한 직원이 게시판에 민원을 남기자 관련 부서는 온도를 1~2도 낮췄다. 실내 온도가 24도로 내려가면서 이번에는 “사무실에 ‘겨울’이 찾아왔다”, “손발이 시려 일을 못하겠다”는 민원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에서 일하는 정모씨(27)는 “에어컨 온도는 근무환경을 좌우하는 민감한 사항”이라며 “직원들의 전반적인 의견을 듣고 협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털어놨다.

껐다 켰다 반복하며 ’눈치싸움’

무더위가 찾아오는 여름철마다 ‘에어컨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높은 습도와 폭염 등으로 불쾌지수가 높아진 탓에 직장과 학교, 독서실, 카페 등에서는 에어컨 온도를 변경하다가 갈등을 빚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국가가 정해놓은 ‘적정’ 냉방온도 기준이 있지만 권고사항이라 지킬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한 공간에 있어야 하는 직장인과 학생들 사이에서 에어컨 전쟁은 빈번하게 벌어진다. 취업준비생 우모씨는 “학교 열람실 중 에어컨 온도를 자체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곳에서는 꼭 눈치싸움이 벌어진다”며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관련 게시물이 올라오는데 ‘추운 사람이 옷을 챙겨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고 말했다.

직장에서는 상사의 체감 온도에 맞춰야 하는 직원들도 있다. 서울의 한 증권사에서 일하는 한모씨(28)는 “에어컨 온도를 사무실에서 조절할 수 있는데 부장님이 춥다고 하면 꼼짝없이 꺼야 한다”며 “사무실의 컴퓨터가 뿜어내는 열도 있어 너무 덥지만 참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민간 대형건물 26도, 공공기관 28도

한여름 사무실·도서관 '에어컨 온도 전쟁'
에너지이용 합리화법과 시행규칙에 따르면 연간 에너지 사용량이 2000TOE(석유환산톤) 이상인 대형건물은 실내 냉방 온도를 26도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기업 외에도 백화점, 대학교 등이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공공기관은 28도를 유지해야 하고, 판매시설과 공항은 25도 이상이다. 다만 의료기관, 학교, 노인 및 아동시설 등은 자율적으로 온도를 관리한다.

하지만 민간시설에서 이 기준을 꼭 지켜야 할 필요는 없다. 현행법에선 “건물의 냉방 온도를 적합하게 유지 및 관리하지 않으면 온도를 조절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권고하거나 시정조치를 할 수 있다”고 돼 있지만 과태료 부과 등의 처벌 규정이 없다는 게 산업통상자원부 설명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민간 대상으로는 에너지시민연대 등 시민단체와 연계해 적정 냉방온도를 지키라고 홍보활동을 하는 수준”이라며 “민간의 냉방온도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단 정부는 에너지 수급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에너지사용제한 조치’를 시행할 수 있다. 그러나 2016~2017년 이 조치가 시행됐을 때 산업부 등 관계 부처는 주로 문을 열고 냉방 영업을 하는 상점 위주로 단속을 벌였다. 하지만 올해 여름은 지난해만큼 덥지 않아 전력 수급이 안정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민간까지 적정 온도를 지켜야 하느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민간소비가 둔화하고 건설투자가 줄면서 에너지수요 증가율 전망치는 2.5%로 지난해(2.7%)에 비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