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LO 핵심협약 비준 요구하는 민노총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조합원 및 시민단체 회원들이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관련법 규탄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ILO 핵심협약 비준 요구하는 민노총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조합원 및 시민단체 회원들이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관련법 규탄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하고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노동법 개정을 강행하기로 했다. 노동계 요구사항을 대거 수용한 반면 파업 때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처벌 폐지 등 경영계 핵심 요구사항은 제외하면서 ‘노동계 편향’ 논란이 불거질 전망이다.

고용노동부는 30일 노동조합법 공무원노동조합법 교원노동조합법 등 노동관계법 세 개 법률의 개정안을 공개했다. 31일 입법예고를 거쳐 오는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개정안은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고 5급 이상 공무원과 퇴직 공무원·교원 등의 노조 조직과 가입을 허용하는 게 핵심이다. 해직 교사를 조합원에 포함함에 따라 법외노조로 분류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합법화의 길이 열리게 됐다.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전임자 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쟁의행위를 할 경우 처벌하던 조항이 삭제됐다. 경영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노동계에 일방적으로 편향됐다”며 “노조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크게 강화된 반면 사측의 대응 방안은 제한돼 경영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해고자도 노조 가입' 法개정 강행
해고자가 임금협상, 노조 전임자도 급여 받아…'노동권력' 날개 단다

정부가 31일 입법예고한 노동법 개정안은 노동계의 숙원을 대거 반영했다. 노동조합 가입 범위를 확대하고, 노조 전임자의 급여를 허용한 게 대표적이다. 경영계 요구는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과 ‘사업장 내 쟁의행위 일부 제한’ 정도만 담겼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시작부터 ‘노동계 편향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출범 직후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을 국정과제로 추진해 노동계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결사의 자유 등 ILO 핵심 협약을 비준하려면 국내 노동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었다.

지난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에서 법 개정을 위해 노사가 협의하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요식 행위에 가까웠다. 논의 과정이 노동계 입장에 치우치자 경영계가 반발해 결국 합의가 불발됐다. 그러자 경사노위가 공익위원 합의 형식을 빌려 입장문을 내놨지만, 이 역시 노동계에 치우쳤다는 비판이 거셌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를 토대로 한 개정안을 강행하는 것이다. 법안 내용은 한국 노사 관계의 근본 지형을 뒤흔드는 것이어서 앞으로 작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해고자가 노조활동 주도할 가능성

정부안대로라면 실직자, 해고자도 기업단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고 임원도 될 수 있다. 회사 직원 대신 해고자가 노조 대표로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에 나설 수도 있다.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면서 교섭 초기부터 노사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 경영계 한 관계자는 “개별기업 단체협상 과정이 직업 노동운동가에 의해 좌지우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노조 전임자 대폭 늘어날 듯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도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과도한 노조 전임자 문제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는 노사정이 1997년 이후 13년간이나 해결책 마련에 골몰하던 우리 노사관계의 최대 이슈였다. 1997년 노동법 개정 때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방침을 정하면서 정부가 전임자 급여 금지와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을 마련하도록 법 부칙에 정했다. 그 후 노사정 대화와 협상에서 무수한 대립과 갈등이 반복되다 2010년 법개정 때 근로시간면제제도가 도입되고,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가 마련되면서 겨우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번 법 개정으로 어렵게 나온 전임자 급여금지 원칙이 다시 어그러지게 됐다. 전임자 급여를 요구하며 벌이는 파업에 대한 처벌 규정도 없어진다. 강성노조가 있는 사업장일수록 노조 업무만 전담하는 전임자가 다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개정안에 따르면 교섭창구 단일화 규정도 완화된다. 사용자가 ‘동의하는 경우’라는 제한은 있지만 개별 교섭 시 모든 노조와 성실히 교섭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또 국가·지방자치단체가 기업별 교섭을 넘어 산별·지역별 교섭 방식을 촉진하도록 노력의무를 부과했다. 사실상 노동계 요구에 맞춰 산별교섭을 유도하겠다는 게 정부의 속내다.

전교조 합법화 길 열려

해직 교사의 노조 가입과 활동을 인정하는 바람에 법외노조로 남아 있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정부안대로 법이 개정되면 합법노조 자격을 얻을 길이 열린다. 공무원 노조 가입 대상도 확대돼 소방직 공무원과 중앙부처 5급 공무원 등의 노조 가입이 허용된다. 노사 뿐만 아니라 국민적 동의가 전제돼야 하는 사안인데도 정부가 ILO협약을 빌미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영계 요구는 찔끔 반영

경사노위 논의 과정에서 경영계는 그간 논의가 지나치게 노동계 중심이었다며 △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 보완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폐지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 입법예고안은 단협 유효기간과 사업장 점거행위 금지만을 담았다. 경영계가 “부당노동행위를 형사처벌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주장해온 국제기준(글로벌 스탠더드)은 아예 고려되지 않았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사자율 원칙이 강조되는 노사관계법을 고려할 때 정부가 균형 잡힌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최종석 전문위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