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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법조인열전 (25)
'IMF 세대' 사법연수원 29기
사법연수원 29기가 입소한 1998년 한국은 외환위기에 휘청이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 생활비로 사용하던 연수원생이 많았는데, 금리가 폭등해 어려움을 겪는 29기가 여럿 나왔다. ‘경제가 이 모양인데 우리 모두 직장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컸다. 더구나 29기 입소생은 592명으로 28기보다 96명 많았고, 27기(315명)의 두 배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들의 걱정은 기우였다. 역설적이게도 부도가 나거나 경영위기에 내몰린 기업들이 인수합병(M&A) 시장에 쏟아지면서 변호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86세대(1961~1969년생)의 ‘끝물’인 29기에서는 진보적 색채의 정치인과 시민단체 활동가가 많이 나왔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 서기호 전 정의당 의원, 권두섭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법률원 변호사,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 오기형 변호사 등이 대표적이다.
'보수 女전사'로 뜬 이언주…국제 공조수사 기틀 닦은 이영상

검찰개혁 불씨 당긴 백혜련

29기에는 사법개혁과 검찰개혁 논쟁의 불씨를 댕긴 두 명의 여성 검사가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집권 중이던 2011년, 백혜련 당시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는 검찰 내부통신망에 “검찰이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글을 올린 뒤 검사복을 벗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된 유언비어 및 괴담을 유포하면 구속수사하겠다는 검찰의 말을 듣고서다. 현재 백 변호사는 여당의 초선 의원으로 국회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 등 검찰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성폭력 전문검사인 박은정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은 2012년 인천지검 부천지청 검사 시절 현직 판사로부터 ‘기소 청탁 의혹’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남편인 김재호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당사자로 지목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았다.

판사 출신인 김형연 법제처장과 서기호 전 의원도 연수원 29기 동기다. 김 처장은 서울남부지법 판사로 재직하던 2009년 신영철 당시 대법관의 재판개입 의혹이 불거지자 그의 용퇴를 촉구하는 글을 실명으로 올렸다. 법원 내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를 맡으며 ‘법관 독립’을 강조했으나 2017년 법복을 벗은 지 이틀 만에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뒷말을 낳았다. 서 전 의원은 법관 시절 SNS에 ‘가카의 빅엿’이란 글을 올려 징계를 받은 일화가 유명하다.

바른미래당에서 탈당해 현재 무소속인 이언주 의원은 문재인 정부를 연이어 비판하며 ‘보수의 여전사’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2일 이 의원이 연 출판기념회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홍문종 우리공화당 공동대표 등이 참석하면서 보수 정치권이 주목하는 유명 정치인이 됐다. 황 대표는 29기가 사법연수원에서 공부할 때 연수원 교수를 지내 이 의원과는 사제지간의 인연이 있다.

베스트셀러 ‘검사내전’ 저자 김웅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는 부장을 맡고 있는 29기가 16명이다. 김태권 강력부장은 국제마약 분야에서 2급 공인전문검사(블루벨트) 자격을 획득한 대표적 ‘마약통’이다. 그는 부산지검 강력부장, 대검찰청 마약과장 등을 지냈으며 2011년엔 멕시코에서 국내로 필로폰을 밀수하는 경로를 최초로 적발해냈다. 권순정 형사2부장은 가습기살균제 사건 재수사를, 형진휘 형사5부장은 현대·기아자동차의 엔진 결함 발표 지체 의혹 수사를 맡았다.

검사 생활을 바탕으로 책을 펴낸 이들도 있다. 연수원 시절 사법연수원지(紙) 편집위원을 지냈을 만큼 글재주가 좋은 김웅 대검 미래기획·형사정책단장은 《검사내전》이란 베스트셀러의 작가다. “미소를 머금으며 능청스럽게 구라를 잘 풀었다”는 동기의 전언처럼 말재주도 좋아 방송에 여러 번 출연했다. 김 단장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검찰 측 실무를 맡고 있다. 양중진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은 지난해 《검사의 삼국지》와 《검사의 스포츠》란 책을 펴냈다.

법원에도 주요 재판을 담당한 29기가 많다. 박정길 서울동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3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수사를 받던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이례적으로 장문의 기각 사유를 내놔 화제가 됐다. 구속영장을 기각할 때는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고 범죄성립에 의문이 든다는 등의 짧은 문장으로 설명하지만 당시 기각 사유는 667자 분량으로 원고지 3장이 넘었다. 최창훈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는 올 5월 ‘친형 강제입원’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금융규제 분야 최고 전문가에서 대형로펌 MP 된 이명수

이명수 화우 변호사

이명수 화우 변호사

이명수 화우 변호사는 2000년 금융감독원이 변호사를 채용할 때 1기로 합류해 '금감원 1호 변호사'로 유명하다. 금감원에서 10년간 재직하면서 법무팀장, 기업공시팀장 등을 지냈으며 2010년 화우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는 한국토지신탁 등 다수의 금융회사 M&A를 수행했다. 지난해부터는 화우의 경영전담 변호사를 맡고 있다.

국내 최초로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 방문검사를 지내고 법무부 국제형사과 근무 경험이 있는 이영상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검찰 재직 시절 국제 공조수사의 기틀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은 외국 기업 형사사건 자문 및 변론 업무 등을 맡고 있다. 부장검사 출신인 한정화 광장 변호사는 선거 사건과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등 수사에서 일가견을 보였다. 공직선거법 해설서를 집필했을 정도로 이론에도 밝다는 소리를 듣는다. 같은 로펌의 김성환 변호사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실 조세조장 출신으로 세금소송과 관련해 두각을 보이고 있다.

카페24·두산밥캣 IPO 이끈 조명수

이동건 변호사는 법무법인 세종에서 M&A 분야의 주포로 활약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지난해 KCC 컨소시엄의 실리콘 제조업체인 모멘티브퍼포먼스머티리얼 인수(3조4695억원)와 CJ그룹의 미국 냉동식품업체 슈완스컴퍼니 인수(2조284억원) 등 대형 국제(크로스보더) 딜을 자문했다. 웅진그룹의 코웨이 인수(1조6849억원)도 그의 손을 거쳤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조명수 변호사는 자본시장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다. 금융감독원 변호사를 거쳐 김앤장에 입사한 조 변호사는 ‘테슬라 상장(적자기업 상장특례) 1호’ 기업인 카페24와 셀트리온헬스케어, 두산밥캣 등의 기업공개(IPO)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대검 중수부 검찰연구관 출신 이남석 변호사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목을 끌었다. 윤 총장이 과거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에게 이 변호사를 소개해준 것이 사실인지에 대한 논쟁이 펼쳐져서다. 조병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건설 관련 소송을 다수 수행해왔다. 사법연수원 29기 수석은 문준섭 김앤장 변호사가 차지했다. 문 변호사는 연수원 수료 후 판사로 임용됐으며 2017년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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