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 끌어왔던 한국 정부와 미국계 사모펀드(PEF)인 론스타 간 5조3000억원대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의 선고가 당초 올해 9~10월에서 내년 상반기로 늦춰질 가능성이 커졌다. 중재판정부가 지난달 론스타와 하나금융지주가 벌인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소송의 판결문을 추가 증거로 채택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다. 한국 정부와 론스타 간 ISD의 심리 절차는 3년 전인 2016년 7월 종료됐다. 만약 이 판결문이 추가 증거로 채택되면 심리 절차가 재개되고, 판정은 또 해를 넘기게 된다.
7년 끈 ‘5조 론스타 ISD’ 판정 또 해 넘길 듯
◆ICC 판정문, 론스타에 불리하지 않아

19일 국제중재업계에 따르면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중재센터(ICSID) 중재판정부는 론스타와 하나금융지주의 중재소송 판결문을 검토 중이다. 국제 중재업계 한 변호사는 “중재판정부가 ICC 중재판정문에 대해 한국과 론스타 측에 제출하라고 요구했고, 론스타 측이 지난달 이를 제출했다”며 “아직 증거채택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ICC 중재판정부는 지난 5월 외환은행 매각 시 하나금융의 고의적인 매각 지연이 없었다며 하나금융 손을 들어줬다. 14억430만달러(약 1조5700억원) 규모 중재 소송에서 하나금융이 완승한 것이다. 론스타는 당시 패소로 하나금융이 지급한 수십억원의 변호사 비용과 중재 비용도 함께 부담해야 했다.

한국 정부와 론스타 간 ISD의 주요 쟁점은 △금융위원회의 외환은행 매각 가격 인하 압박 △금융위의 매각 승인 지연 △부당한 세금 부과 등이다. 이 중 외환은행 매각 가격을 둘러싼 쟁점은 ICC 중재와 겹친다. ISD 중재판정부는 하나금융과 론스타 간 중재판정이 한국 정부와 론스타 간 ISD와 서로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고 보고 판정에 참고하기 위해 양측에 판결문 제출을 요구한 것이다.

론스타 측은 1조원 규모의 ‘예선(하나금융과 ICC 중재)’에선 비록 패소했지만 5조원 규모인 ‘본선(한국 정부와 ISD)’에 승부를 걸겠다며 집요하게 ISD 중재판정부를 설득하고 있다. 하나금융이 론스타의 피해에 대해 한푼도 배상하지 않은 만큼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을 더 물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국제 중재 전문가는 “중재업계에선 하나금융의 ICC 중재 승소가 정부의 ISD 배상 부담을 가중시키는 ‘제로섬 게임’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많았다”며 “ICC에서 론스타가 패소했지만 정작 판정문에는 론스타에 불리하지 않은 내용이 있다”고 말했다. 론스타가 앞장서 중재판정부에 판결문을 제출한 것도 이런 이유다.

◆증거 채택 여부 이달 결정

론스타는 3월에도 ICSID 판정부에 추가 증거를 내겠다고 요청했지만 아직 판정부는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론스타는 지난해 하나금융과의 ICC 중재 비공개 심리에서 “하나금융 측 진술에 한국 정부의 외환은행 매각 개입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었다”며 당시 진술내용에 대해 추가 증거 제출을 신청했다.

ISD 중재판정부는 이르면 이달 안에 ICC 판정문을 추가 증거로 수용할지 결정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수용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다만 수용되더라도 재판 결과를 뒤흔들 만한 쟁점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판정부가 추가 증거 제출을 허용한다면 정부와 론스타는 또다시 치열한 공방을 벌이게 된다. 정부도 다양한 대비책을 마련한 상태다. 심리 절차가 3년 만에 재개되면 판정부의 선고 시점은 빨라야 내년 상반기로 늦춰진다. 양측의 법률자문 비용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이인혁/안대규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