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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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형 사립고(자사고)를 없애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요?”

부산 해운대고를 졸업하고 명문대에 진학해 금융공기업에서 일하는 박모씨(29)는 최근 ‘자사고 죽이기’ 논란에 대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이같이 말했다. 박씨는 “자사고가 문제의 원인이 아닌데 자사고를 마치 악(惡)으로 몰아가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가 졸업한 해운대고는 올해 자사고 재지정 평가 결과 기준점을 넘지 못해 지정취소 절차를 밟게 됐다.

한국경제신문이 자사고 졸업생 10명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나온 공통된 의견은 ‘자사고가 왜 일반고 황폐화의 주범으로 낙인 찍혀 마녀사냥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사고를 없애도 학벌주의라는 사회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제2, 제3의 자사고 대체 학교가 나올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고교 서열화의 원인은 학벌주의”

서울 이대부고 졸업생 A씨는 “한국 사회에서 고등학교가 서열화된 이유는 자사고 때문이 아니라 뿌리 깊은 학벌주의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출신 대학이 죽을 때까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사회에서 서울대 진학자 수로 고등학교 순위가 갈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경북 포항제철고를 졸업한 B씨는 “입시 체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자사고 존폐 여부와 상관없이 입시 위주의 교육과 고교 서열화 문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자사고가 입시학원화 됐는가에 대한 질문에선 의견이 엇갈렸다. 서울 하나고 졸업생 C씨는 “하나고는 오히려 입시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수업이 많았다”며 “한 학기에 악기와 체육 과목을 하나씩 들어야 하는 ‘1인 2기’ 등이 대표적인 제도”라고 말했다. 경기 안산 동산고를 졸업한 D씨도 “봉사활동이나 동아리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는 자사고를 입시학원으로 보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D씨와 같은 동산고를 졸업한 E씨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잘 하는 학생들만 모아 또다시 경쟁시키는 구조이다 보니 자사고가 입시 경쟁을 과열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B씨는 “학교에서 경찰대나 육사를 지망하는 학생들을 따로 관리해 무술 단증을 딸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며 “각종 경시대회에 나가는 학생들을 위해 방과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학교 차원에서 입시 성과를 끌어올리기 위한 지원이 많다”고 말했다.

◆자사고 폐지, 부작용 잇따를 듯

설령 자사고가 입시학원화 되더라도 그게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대부고 졸업생 F씨는 “면학 분위기가 좋은 학교에 진학한 뒤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을 가는 게 왜 손가락질 받을 일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는 “일반고가 황폐화됐다면 지원을 늘려 학교를 정상화시킬 문제이지 왜 자사고를 없애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전주 상산고를 졸업한 G씨는 “고등학교가 입시학원으로 변질된 것은 자사고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모든 고등학교에 해당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자사고를 없애는 데 따르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인터뷰에 응한 자사고 졸업생들은 “교육열이 높은 한국 사회에서 무턱대고 자사고를 없애면 강남8학군 시절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D씨는 “지방 자사고가 없어지면 서울과 비서울권의 교육 격차가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 중앙고 졸업생 H씨는 “중등 교육이 토론식이나 창의 교육으로 바뀌고 입시제도 역시 그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면 자사고가 폐지돼도 ‘제2의 자사고’가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종관 기자/권오신/남정민/오현우 인턴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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